5.30. 기생충 (PARASITE), 2019 :: 꿈과 갈망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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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결말 포함) 

 

영화는 스포 없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 보실 분들은 이 리뷰를 패스하시길 바랍니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에 원래 더 보이를 보러 갈 생각이었으나 하필 그 당일에 더 보이 상영을 내려서 뭘 볼까 하다가 결국 패스하고 다음날 개봉하는 기생충을 보러 가기로 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기도 했고 포스터부터 어떻게 영화가 진행될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영화였기 때문에 조~금 기대하고 보러갔다. 예고편을 2개 보고 보러 갔는데 솔직히 예고편 봐서는 별로 내용이 짐작이 안 갔었다. 그냥 문서 위조로 학력 위조해서 부잣집에 고액 과외 면접을 보러가는구나-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딱 그 정도. 근데 역시 영화는 예고편도 안 보고 가는 게 제일 좋다. 그래야 모든 장면이 다 새로우니까. 근데 이 영화 상영 시간이 길었지만 정말 전혀 지루하지 않고 몰입해서 봤다.

 

일단 일의 발단은 기우가 친구에게 고액 과외 면접 자리를 주선 받게 되면서다. 친구가 갑자기 교환학생으로 외국으로 떠나게 됐는데 믿을 수 있는 친구인 기우에게 그 자리를 맡긴다는 것이다. 비록 대학은 못 갔지만 수능을 4번이나 봤고 자기 과 애들보다 훨씬 영어도 잘한다면서. 근데 사실 이것보다는 친구가 다혜에게 마음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것인 듯 하다. 어차피 자기보다 여러모로 못난(가난하고 백수라는 현실) 기우가 다혜와 잘 될 일이 없다고 확신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근데 친구도 그다지 정상 같아 보이지 않은 건 이미 20대 중반 이상 나이였을 텐데 미성년자와 사귀는 건 좀.. 그랬다. 뭐, 그건 기우도 마찬가지였지만. 

 

기우의 집은 매우 가난하다. 대왕 카스테라 사업 실패로 인해 망해버린 집에서 모두가 백수다. 미대에 떨어진 여동생 기정은 학원 다닐 돈조차 없다. 인터넷도 신청할 수 없어서 와이파이도 비번이 걸리지 않은 다른 집 걸 잡아서 쓰는 형편이다.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으며 하나 보이는 창문으로는 취객들이 수시로 노상방뇨를 하곤 한다. 없는 살림에 다 함께 근근이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활하고 있다. 피자 박스를 접다가 아빠인 기택은 동영상에서 피자 박스를 스피드하게 접는 여자를 보며 자기도 엄청 빠르게 접어나가는데 이후 그 박스는 전부 불량 처리가 난다. 그리고 넷 중 하나는 불량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게 나름대로 복선이었다.

 

기우의 친구는 수석을 하나 선물해준다. 솔직히 기우의 집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석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나 다름 없었다. 엄마인 충숙이 먹을 게 더 좋다고 말한 것처럼. 사실 난 그 수석 보면서 차라리 저 수석 팔면 그냥 두는 거보다 돈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뭐, 친구가 선물해준거니 팔 수는 없었겠지만.. 근데 이 수석이 영화 마지막까지 존재감을 빛낸다. 포스터를 잘 보면 알겠지만 기우가 이 수석을 들고 있다.

 

우선 기우는 박사장 집에 찾아가 박사장의 아내 연교에게 면접 겸 테스트로 과외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면접 때 기정이가 만들어준 학력 위조 서류를 보여주지만 심플한 연교의 성격(순진하다 못해 어리버리한 느낌이다)으로 인해 그다지 자세히는 훑어보지 않는다. 연교의 딸 다혜와 연교에게 좋은 인상을 보인 건지 기우는 계속해서 과외를 맡게 된다. 그러던 중 기우는 다혜의 남동생 다송이가 그림을 그리는 걸 알게 되는데 연교에게 미술 선생들이 죄다 한달을 못 버티고 관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때다 싶었던 기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촌 중에 일리노이 주립대학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제시카라는 애가 있다며 동생 기정을 소개시켜준다. 완전 사기치네 싶었는데 예상대로 그 이후 온가족을 이런 방식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부자인데도 착하다는 기우의 말에 충숙은 돈이 다리미라면서 돈이 구김살을 없애준다고 한다. 자신도 돈만 있으면 연교보다 훨씬 더 착해질 수 있다면서, 여유가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왠지 그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슬펐다. 

 

기정 또한 면접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다송이의 그림을 보고 1학년 때 어떤 일을 겪었었냐고 질문을 해서 연교의 신뢰를 얻게 된다. 사실 이건 기정이 미술 치료와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보고 다송의 그림에서 뭔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생각해 넌지시 던져본 건데 그게 딱 맞아떨어진 거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연교는 폭풍 눈물을 흘리며 기정에게 휘둘려 미술 선생으로 맞이하게 된다. 마침 박사장이 집에 찾아왔고 자신의 운전수 윤기사에게 기정을 집까지 데려다달라고 말을 하는데 어째서인지 기정은 차 안에서 팬티를 벗어서 자동차 밑에 넣어놓는다. 윤기사는 기정에게 호감이 있는 건지 거절해도 자꾸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기정은 혜화역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단칼에 잘라버린다. 

 

이후 박사장은 자동차 밑에서 기정이 일부러 차 밑에 놔둔 팬티를 보게 되고 기사가 자기 차에서 애정행각을 했다고 의심하게 된다. 열이 받은 박사장은 (선을 넘는 걸 매우 싫어한다) 기사를 새로 뽑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박사장은 어차피 사람은 차고넘치니 바꾸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애초에 자기가 만든 상황이긴 했지만) 연교에게 어렸을 때부터 봐온 기사분이 있다며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기택을 소개시켜준다. 물론 신상정보는 완전히 거짓말이다. 그렇게 해서 윤기사는 쫓겨나고 기택이 들어오게 된다. 

 

이제 남은 건 충숙 뿐이다. 충숙은 옛날에 투포환 선수였지만 지금은 집안일을 하며 부업을 하는 상태이다. 기우와 기정은 박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 도우미 문광이 아주 오랫동안 그 집에서 일을 해왔고 (집을 건축한 사람이 부리던 가정 도우미였다) 어떤 때는 꼭 그 집주인처럼 행세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된다. 다혜는 복숭아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만을 품고 있는데 알고보니 문광이 심각한 복숭아 알러지를 갖고 있어서 못 먹은 것이었다. 그걸 알게된 기우와 기정은 복숭아 털을 깎아 문광에게 흩뿌렸고 병원에 간 문광의 모습을 기택이 찍어서 문광이 결핵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친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일부러 박사장 가족이 집에 돌아올 때 문광에게 복숭아 털가루를 뿌려서 마구잡이로 기침을 하게 만든 다음 버린 휴지에 핫소스를 뿌려서 마치 피를 토한 것처럼 꾸며낸다. 연교는 꾸지람을 들을 것이 무서워 박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오랫동안 함께 해온 문광을 잘라버린다. 

 

문광이 잘리고난 뒤 박사장은 기택에게 아쉬움을 토로한다. 문광이 요리를 잘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아내는 요리를 정말 못한다고 한다. 1주일만 지나도 집안은 난장판이 될 거라 하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기택은 회원제로 운영된다는 케어 서비스를 소개해준다. 물론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기택은 위조 명함을 박사장에게 건네주고 이 명함은 박사장이 연교에게 건네준다. 연교의 전화는 기정에게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충숙은 박사장의 집에 가정 도우미로 들어가게 된다. 완전히 모든 가족이 박사장의 집에 기생하게 된 것이나 다름 없다. 참고로 박사장네는 돈을 꽤 많이 준다. 기우는 다혜의 과외 선생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집 안에서 키스를 하는 등 완전 사귀는 사이나 다름 없게 되었는데 다혜가 기정을 소개받자마자 여자친구냐며 유난히도 기우의 관심을 받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아 좀 애정결핍 느낌이 든다. 왠지 기우의 친구도 그런 식으로 다혜와 사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혜가 짜파구리를 자기만 안 해줬다고 연교에게 투정부리는 장면도 있다. 자신에게도 애정을 쏟아주길 바라는 모습)

 

영화에서 냄새에 대해서 말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다송은 기정과 기택에게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기정은 이 냄새가 단순히 섬유유연제나 비누의 냄새가 아닌 반지하에서 살기 때문에 나는 냄새라 말한다. 반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없앨 수 없는 냄새인 것이다.

 

다송이의 생일 전날, 박사장네는 캠핑을 가게 된다. 기택네 가족은 이 때다 싶어 술파티를 벌인다. 난 술을 전혀 안 마시고 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몰랐는데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알게 되었다. 반지하방에서 백수 생활하며 살 때는 제일 싼 술을 마셨는데 가족들이 하나둘 일을 가지게 되면서 수입 술이 늘었고 모두가 박사장네 집에 들어가게 된 이후에는 술파티에서 양주를 마시게 되었다고... 꽤 디테일하다고 느껴졌다. 난 기택네 반지하방에 많이 먹어봐서 반가웠던 생수 이름 보고 싼 거로 잘 골라서 썼네 싶었는데 술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는 줄 몰랐다. 

 

기택네 가족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벼락치는 풍경을 뻥 뚫린 듯 보이는 넓은 창문으로 바라보며 그저 자신들의 상황을 즐긴다. 마치 반지하방이 자신들의 집이 아닌 것처럼, 박사장네 집이 자신들의 집인 것처럼. 난 보면서 저러다가 날씨 안 좋다고 박사장네가 갑자기 다시 오면 어쩌려고 그러나 조마조마 했다. 가족들은 서로 얘기를 하는데 충숙은 기택에게 불 켜질 때 숨는 바퀴벌레 같다고 비유를 하고 기택은 정색하며 충숙의 멱살을 붙잡는다. 정말 싸우는 건가 싶었지만 서로 웃음으로 넘기는데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택은 자신 때문에 쫓겨나야 했던 윤기사가 다른 일자리를 구했겠지?하며 걱정하는데 기정은 우리들 일이나 신경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남 걱정할 여유조차 없이 살 수 밖에 없는 팍팍한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먹고 살기 위해서 경쟁하고 뺏고 뺏어야 하는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막상 그들보다 상류층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지만 말이다.

 

그들이 술판을 벌리고 널부러져 있는 상황에 갑자기 누군가가 집에 찾아온다. 인터폰을 봐보니 그건 기존의 가정 도우미 문광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멍투성이인 상태로 괴기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문광은 지하실에 두고온 게 있어서 찾아왔다며 들여보내달라고 한다. 충숙 이외의 남은 가족들은 충숙이 말했던 비유처럼 정말 사사삭 자신들의 몸을 숨긴다. 들키면 안 되니까. 문광은 자신이 찾아온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몰래 카메라 전기선도 끊고 찾아왔다. 박사장 가족들이 캠핑을 하러 간 건 다송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지하로 내려간 문광은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았고 결국 충숙이 안에 따라 들어가게 되는데 지하실에서 혼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숨겨진 문을 열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숨겨진 문을 연 문광은 허겁지겁 밑으로 밑으로 어두운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것은 문광의 남편이었다!

 

와, 솔직히 기택의 가족들이 전부 박사장네 가족 집으로 들어가는 거 보고 생각보다 뻔한 스토리네?하고 생각 했는데 여기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로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되게 우아한 느낌의 가정 도우미로 있었던 문광이 사실은 기택의 가족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 사정을 들어보니 문광의 남편은 대왕 카스테라 사업을 말아먹으면서 (웃프게도 기택과 망한 이유가 같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사채를 썼기 때문에 빚독촉도 매우 심했다. 그래서 문광의 남편은 이곳으로 도망쳐오게 되었고 그렇게 된 지 4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문광은 지하실에 올 때마다 남편에게 먹을 걸 제공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음식은 자기돈으로 샀다고 한다.

 

사실 지하실의 벙커는 북한군이나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놓은 공간인 것 같다고 한다. 근데 이 장소에 대한 건 박사장네는 모르고 있다고 한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숙은 어이 없어하고 이 사실을 박사장네에게 알리겠다고 한다. 문광은 충숙에게 굽신거리며 같은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고, 돈은 매달 줄테니까 그냥 남편에게 먹을거를 1주일에 한번씩만이라도 주면 안되겠냐고 사정한다. (문광의 얼굴이 멍투성이인 건 아마도 빚쟁이들에게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충숙은 얄짤 없이 이 사실을 박사장네에게 알리려 하는데 이 사실을 계단에서 엿듣고 있던 다른 가족들이 발을 헛디뎌 전부 밑으로 떨어져버리고 이 때 가족이라는 사실이 들통나고 만다. 문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영상을 찍어 증거를 남겼고 상황은 역전된다.

 

벙커에서 위로 올라온 그들은 기택네 가족들을 손들고 서있게 만들고는 문광은 북한의 여앵커 흉내를 내며 조롱한다. 전송 버튼 하나로 기택네 가족을 끝장 낼 수 있는 게 북한의 핵미사일 버튼 같다면서. 문광 남편은 자신이 지하실에서 살 수 있는 건 박사장 덕분이라며 이상하리만큼 박사장을 존경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통치자를 무조건 받들게 세뇌당한 북한 주민 같아보이기도 했다. 박사장이 문광 남편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다. 그 감사 인사를 모스 부호로 표현할 정도다. 전등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북한 여앵커 성대모사는 풍자가 아닌 단순한 한국식 농담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다른 뜻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문광 부부는 박사장네가 집에 없을 때 마치 이곳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행동해왔던 걸 알 수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정원 풍경을 즐기는... 하지만 상황 역전도 잠시 기택네 가족은 문광 부부을 덮치고 핸드폰을 빼앗아 증거를 없애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때 걸려온 전화 한통이 모든 상황을 더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만든다. 그건 연교의 전화였다. 캠핑장이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난리가 났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뒤에 도착하니 바로 먹을 수 있게 짜파구리를 해달라고 한다. 이 때부터 모든 가족들이 비상이 걸렸고 술파티를 했던 흔적을 허겁지겁 치워서 없앤다. 벙커에 있었던 문광 부부는 다시 지하실로 쳐넣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문광이 계단에서 굴러 머리를 심하게 박게 된다. 심지어 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숨기기가 급급한 상황이라 일단 기택은 문광과 문광 남편을 묶는다. 

 

비가 내리지만 인디언을 좋아하는 다송이는 정원에 설치된 인디언 텐트에서 자겠다고 한다. 그 사이 지하에 있던 기택 가족은 거실 테이블까지 숨어들게 된다. 정말 충숙이 말했던 바퀴벌레 비유처럼 불이 꺼지면 사사삭 재빨리 움직인다. 기택, 기정, 기우 세 사람은 테이블 밑에서 숨죽이고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다송이 때문에 박사장 부부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겠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데 텐트에 물이 새지는 않을지 걱정하지만 물은 새지 않는 듯 하다. 두 사람은 소파에 누워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박사장이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연교는 그 냄새를 맡지 못 한다. 박사장은 이 냄새가 전철 타면 나는 특유의 냄새 같다고 말을 한다. (이 말에 연교는 전철을 안 탄지 오래 돼서 모르겠다고 한다) 이건 기택에게 풍겨지는 반지하의 냄새를 뜻하는 것이었다. 기택의 가족이 테이블 밑에 숨어있었으니까. 그러면서 박사장은 기택의 얘기를 하는데 기택이 선을 넘는 것처럼 하면서도 넘지 않는다며 선을 넘지 않아서 좋다고 말을 하는데 냄새 만큼은 선을 넘는다고 얘기를 한다. (선을 넘는 것처럼 하면서 넘지 않는다 한 것은 사모님을 사랑하시죠? 라는 질문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기택은 또 다시 자신에게 냄새가 나나 옷 냄새를 맡게 된다. 

 

그러던 중 연교와 박사장이 애정행각을 벌이게 된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헐? 싶어서 이거 15세 등급이 어떻게 나왔지 싶었다. 기택과 가족들은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자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이 느끼게 될 비참함 때문이나 욕망 앞에서 모두가 똑같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이 부분은 다른 사람들 리뷰를 보고 그래서 나왔구나 싶었다) 이런 장면이 나왔나 싶기도 하지만 역시 15세 관람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다. 어쨌든 박사장 부부가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박사장네 집을 찾아갈 때는 오르고 또 올라야 하지만 반지하방으로 찾아가는 길은 그저 계속 내려가야만 한다. 내려가는 중에 그들은 깨닫게 된다. 자신들의 집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그리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하는, 폭포수 같이 빗물이 쏟아지는 계단에서 기우는 자신의 신발과 흘러넘치는 빗물을 바라본다. 이 부분에서 기우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았다. 결코 그들과 섞일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한 때 다혜와의 결혼까지 꿈꿨던 그였지만 이 상황에서 이미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집이 침수된 사람들이 짐을 옮기고 나르고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들의 요청을 들어줄 새가 없다. 기택의 집도 상황이 별반 다를 바 없었으니까. 반지하방은 그야말로 물난리였다. 물은 목까지 차오른 상태였고 온갖 물건들이 물에 동동 떠오른 상태였다. 심지어 그 수석도 물에 떠있었는데 (허상을 뜻한 것일까, 실제라면 수석은 떠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기우는 그 수석을 챙겨서 품 안에 꼭 안는다. 기정은 화장실로 들어가 역류해서 똥물을 쏟아내는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이때의 기정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 표정이 한없이 슬퍼보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 지하 벙커에서는 뇌진탕 증상을 보이는 문광이 변기에 구토를 한다. 두 군데 다 같은 신세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 했다. 

 

세 사람은 수재민들이 모인 비좁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게 되는데 기우는 품에 수석을 꼭 끌어안고 있다. 수석이 자기에게 달라붙는다면서. 그러면서 기택에게 있다고 하던 계획이 뭐냐 질문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계획에 대해서도 말이 많이 나온다. 기우는 계획적으로 움직이려 하지만 기택은 그런 게 없다) 기택은 계획이 없다고 한다. 계획을 하기 때문에 틀어지게 되는 거라면서 그래서 실패하게 되는 거라 한다.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는 식의 말을 하며 그러기에 자신은 계획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우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다음 날 박사장네 가족은 정원에서 다송이의 생일 파티를 열겠다고 한다. 다송이의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한 차원에서 여는 것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택의 가족들은 모두 박사장네 집으로 모이게 된다. 이 때 연교는 기정에게 다송이의 트라우마를 털어놓게 된다. 생일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 다송이는 새벽에 몰래 나왔다가 지하에서 나온 귀신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송이는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고 일부러 생일 때는 집에서 나가 있으려 했다고 한다. (사실 그 때 본 귀신은 지하 벙커에 살던 문광의 남편이었다. 그래서 다송이가 그림을 그릴 때도 문광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 그림만을 그린다) 기택은 생일 파티 준비를 하기 위해 연교와 함께 나가게 되는데 여태까지 냄새가 나는 걸 못 느끼던 연교는 기택에게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창문을 연다. 남편 때문에 의식을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냄새 얘기가 나올 때마다 기택의 표정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누구는 비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연교에게 있어서는 그저 비 덕분에 맑은 날씨를 얻어 기분 좋은 상황이다.

 

충숙과 기정은 지하 벙커에 있는 사람들과 좋게 대화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름대로 걱정을 한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뇌진탕 증상으로 인해 문광은 이미 죽어버린 상태였고 기우가 세운 계획은 지하 벙커의 사람들을 수석으로 죽이는 것이었다. 기우가 지하 벙커로 내려가기 전에 다혜와 영혼 없는 키스를 하고 생일 파티를 축하하러 와준 사람들이 있는 정원을 보며 다혜에게 묻는다. 다들 급하게 나왔을 텐데 (생일 파티 자체가 갑작스러운거였다) 다들 자연스럽고 쿨하다며, 자신도 저들과 어울릴 것 같냐고.. 그 후 기우는 지하실 벙커로 내려가 수석으로 두사람을 죽이려 하지만 수석을 놓쳐서 떨어트려버렸고 밑에서 포박을 풀고 대기하고 있던 문광의 남편에게 기우는 오히려 습격 당한다. 목이 끈에 졸렸지만 겨우 위까지 어떻게든 나온 기우는 끈에 붙어있던 쇠가 어딘가에 걸려서 넘어져버리고 문광의 남편은 그런 기우의 머리에 수석을 내리친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문광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 문광의 남편은 부엌에서 칼을 하나 집어 정원으로 나간다. 그 찰나 기택은 박사장과 함께 인디언 분장을 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택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아마 한가지 이유에서가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그 표정을 본 박사장은 이것도 일의 연장이라며 (수당을 준다고 했었다) 표정 피라는 뉘앙스의 협박 같은 느낌의 말을 건넨다. 그 때 기정은 케이크를 다송이에게 건네주려는 상황이었다. 이건 연교가 기정이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정이는 다송에게 케이크를 들고 다가가려 했고 그 때 기정이를 발견한 문광의 남편이 기정이를 칼로 찔러버린다. 문광의 남편은 모스부호를 전달한답시고 전등 스위치를 머리로 박아대서 얼굴은 피투성이었다. 그 모습을 본 다송이는 또 다시 기절해버린다. 

 

칼을 맞은 기정이는 고통스러워하고 그걸 본 기택은 놀라서 기정이의 상처를 눌러보지만 기정은 평소 쿨한 성격대로 욕을 하며 "누르지마, 누르니까 더 아파"라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너무 덤덤해보여서 그건 그것대로 좀 슬펐다.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기정은 기우에게 이 집과 되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박사장 가족들에게도 정말 선생다운 대접을 받는데 (기정이 행동의 결과) 정말로 기택 가족 중에서 제일 귀티도 느껴지고 당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만 말이다. 기정은 문광의 남편에게 딱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기정 먼저 찌른 건 제일 약해보여서가 아닐까 싶다. 충숙한테는 힘으로 밀릴 것 같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결국 문광의 남편은 충숙과의 싸움 끝에 쇠꼬챙이에 찔려서 죽게 되는데 죽기 직전까지도 박사장에게 "리스펙트!"라며 존경의 인사를 한다. 솔직히 정말 이해 불가였다. 근데 애초에 좀 캐릭터 자체가 약간 지능이 떨어져보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지하에서 박사장 사진을 보며 존경해 왔으니 그런 상황에 그런 말을 남긴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상황 자체가 상당히 괴기스러웠다.

 

기정이 칼에 찔리고 충숙도 위험한 상황이고 돌에 맞아 쓰러진 기우는 다혜에게 업혀 실려나가니 기택은 박사장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구급차를 부르라는 것도, 차를 운전하라는 것도. 박사장이 차 키라도 던져 달라고 하니 그제서야 차 키를 던져주는데 충숙과 문광 남편의 몸싸움 때 차 키가 깔리고 말았다. 문광의 남편이 죽은 뒤 박사장은 문광 남편의 몸을 들어올리며 차 키를 집는데 냄새가 난다는 듯 인상을 쓰며 코를 움켜잡는다. 이 때 기택의 피해의식과 함께 분노가 폭발해버린 것 같다. 그 동안 참아왔던 '냄새'라는 그 말에 모든 게 무너져내린 것 같았다. 기택은 칼을 잡아 박사장을 찔러버린다. 모두가 비명 지르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기택은 홀로 그 집을 나가버린다. 죽어가는 딸도 남겨둔 채. 

 

한달이 지나고 깨어난 기우는 뇌수술로 인해 계속해서 웃는다. 수술로 인한 일시적 후유증이었지만 이 상황이 상당히 슬프게 와닿았다. 미란다 원칙을 들을 때도 그저 헛웃음만 나왔고 법정에서도 그저 실실 웃었다. 거기다 죽은 기정의 유골함 앞에서도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뒤 그는 등산을 하게 됐다. 그 산에서 그 부잣집이 보였기 때문이다. 집행 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경찰들은 사라진 기택 때문에 한동안은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감시도 사라지고 그 집은 다른 부잣집 독일인에게 팔려 집주인이 바뀌었을 때 기우는 그 집 전등을 보고 지하실에 기택이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컵스카우트로 모스 부호를 알고 있었던 기우는 그 모스 부호를 입으로 녹음하고 집으로 와서 해석해본다. 그리고 그건 기택이 기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택은 광란의 생일 파티에서 박사장을 찌른 후 지하실 벙커로 갔고 그 뒤 문광의 남편처럼 한번씩 밖으로 몰래 빠져나와 음식을 먹고 살았던 것이다. 문광의 시체는 정원에 수목장 해줬다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던 때에는 고생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기택의 편지를 읽은 기우는 또 다시 계획을 세운다. 그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이 그 집을 사면 기택이 그 지하실 계단에서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 부자가 된 기우는 그 집을 사고, 그 집 지하실 계단에서 기택은 올라와 기우와 기쁨의 포옹을 한다. 하지만 이건 기우의 상상일 뿐 실제 기우가 있는 곳은 또 다시 그 반지하방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기택이 기우에게 계획이 있으면 틀어지기 마련이라 실패하게 된다고 말했던 걸 생각해보면 기우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렇게 좋은 집은 로또 당첨 되고도 살까 말까 일 테고 이젠 전과까지 생긴 기우가 갑자기 그런 큰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 화면이 환상이라는 게 나오지 않았을 때는 좀 많이 터무니 없지만 그나마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기우의 상상일 뿐이라는 걸 알게된 후에는 절망적인 감정 밖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게 현실적인 결말이었고. 

 

영화에 쿠키 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봉준호 감독 작사,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잔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가 끝나고 그냥 나가버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노래가 궁금했고 영화 자체의 여운도 있어서 앉아서 그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듣고 나왔다. 인터뷰 같은 곳에서는 봉준호 감독은 젊은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기우의 삶을 표현해주는 노래였다. 가사는 슬픈데 노래는 신나서 뭔가 더 슬펐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오만 생각을 하길 바랐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영화는 초중반에 되게 웃긴 장면들이 많았고 심지어 후반에도 웃긴 장면들이 나오는데 상황은 웃기긴 해도 사실 잘 생각해보면 웃기지 않은 상황들이어서 정말 웃프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화였다. 영화 보고나서는 여러가지 생각과 함께 먹먹함이 더 느껴졌던 것 같다. 공생과 기생, 빈부격차가 큰 주제였는데 자신이 어느 입장이냐에 따라서 감정이입하게 되는 사람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많은 리뷰들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지만 말이다. 뭐, 나는 사실 기우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거 같은데 후반부에 너무나도 안타까워보였다. 계획을 세워도 결국 실패하고 자신이 꿈꾸는 삶은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그저 환상 같이 아득하고. 아, 한편으로는 기택의 선택이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초반에 피자 박스 불량이 났을 때 넷 중 하나는 불량, 이게 기택이 불량이라는 말 같았다. 박사장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어차피 여러 상황들은 들키긴 했겠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슬픈 영화였다. 영화로 보고 싶지만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가까운 영화였으니까. 특히 물난리 씬에서 대조되는 모습이 매우 슬펐다. 한쪽에서는 모든 게 망가졌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저 맑고 상쾌하다고 좋아할 뿐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론 기생하면서도 공생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그저 기택네 가족들이 박사장 가족에게 기생할 뿐이라고 생각 했는데 후반부에 박사장이 기택에게 구급차 불러 달라, 차 운전 해달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공생하는 사이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이 영화의 가제가 데칼코마니였다고 하는데 이 제목도 꽤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 영화는 다시한번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보고나서 너무 마음이 무겁고 먹먹했던 터라 선뜻 바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여러 의미로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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