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Bugonia), 2025 [결말 스포 포함] :: 꿈과 갈망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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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원작 스포일러 포함)

 

원작인 지구를 지켜라를 워낙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리메이크작인 부고니아가 궁금했다. 원작은 10년도 더 전에 봤는데 엔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다른 건 진짜 대충 기억나고 엔딩만 유일하게 제대로 기억에 남았다. 웬만한 영화는 엔딩까지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원작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을 알고 영화를 보는 거라 부고니아는 생각보다 재밌지 않았다. 원작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봤다면 그래도 누구의 얘기가 맞는 건지 머리 굴리면서 볼 수 있었을 텐데, 원작의 흐름대로 가다 보니 내용이 미국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라 스토리에 대한 기대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배경 같은 건 2025년에 맞는 상황을 보여줬지만 그래도 이미 내용을 알고 보니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원작을 모르고 보면 훨씬 좋았을 거 같다. 한국 거는 뭔가 더 웃겼던 거 같은데 부고니아는 시종일관 진지한 편이라 솔직히 좀 지루했다. 원작에서는 물파스 장면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부고니아에서는 그냥 항히스타민 연고로 바꿔서 나와서 임팩트는 사라졌다. 그 외에 원작에서 특이한 게 더 많았던 거 같은데 부고니아는 이런 부분에서 좀 더 밋밋해진 거 같다.

 

벌이 사라지고, 지구가 병들어가는 건 전부 외계인 때문이고 그들의 목적은 결국 지구 침공이라고 생각하는 테디와 사촌 동생 돈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아주 큰 제약 회사의 CEO 미셸이 안드로메다의 외계인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냐면 테디는 그들에게 정신적 지배를 받으면 안 되니까 화학적 거세를 하고서라도 이 일에 임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미셸이 외계인이라 하지만 미셸의 일상을 보여주는 건 상당히 평범하다. 그냥 돈이 많은 CEO의 일상. 회사에 가서는 모두 자율이라고 하면서 실적 없으면 안 되고, 일을 다 처리하면 가도 된다는 말을 남기면서 은근히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주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의 CEO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유유히 정시에 퇴근한다.

 

그렇게 다른 날처럼 평범하게 집으로 돌아간 미셸은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테디와 돈에게 붙잡히게 된다. 평소에 격투기 같은 것도 배워서 그런지 엄청나게 저항해서 도망치는데 결국 테디의 마취 주사기에 의해 잠들어 잡히게 된다. 테디는 잡자마자 머리카락이 외계인들과 소통하는 GPS 기능을 하니 잘라야 한다면서 돈에게 삭발을 부탁한다. 그렇게 삭발을 시키고 항히스타민 연고를 온몸에 바르고 미셸을 지하실에 가둔다. 미셸은 처음엔 자신의 위상을 설명하며 빨리 보내주지 않으면 FBI가 자신을 찾아내서 감옥에 갈 거라고 침착하게 말하지만 테디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테디의 요구는 안드로메다 함선이 월식에 찾아오는 걸 알고 있으니, 황제에게 자신을 데려가달라는 거였다. 황제를 만나 지구를 침공하지 않도록 설득하겠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성명을 녹음기에 저장하라 하는데 미셸은 그냥 해달라는 대로의 내용으로 평범하게 녹음만 해놓는다. 물론 이런 건 테디에게 먹히지 않았다. 나중엔 미셸이 테디의 성질을 긁어서 뺨을 맞기도 한다.

 

테디는 좀 더 제대로 확인하겠다고 하며 전기 고문을 시작한다. 100볼트부터 해서 400볼트까지 올리는데 그때까지 버티는 걸 보고 오히려 테디가 당황한다. 여태까지와는 달랐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견디지 못한 돈은 이 정도만 하라며 전기를 뽑아버린다. 돈은 자폐를 갖고 있고 거의 테디의 말을 순하게 듣는 편이었는데 이 모습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전기 고문 이후 테디는 미셸이 외계인 중에서도 고위 관직자인 거 같다며 몰라봐서 죄송하다고 한다. 그러더니 묶은 걸 풀어주고 병든 엄마가 입었던 옷과 가발을 빌려준다. 참고로 테디의 엄마는 미셸의 회사에서 테스트한 약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가발로 인해 테디의 엄마를 눈치챈 미셸은 식사를 하며 대화 도중 테디의 엄마 얘기를 꺼내며 돈을 더 지불했어야 했다느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다느니 자꾸 엄마 얘기를 꺼내고 테디는 분노한다. 감정이 격해진 테디는 미셸을 목졸라 죽이려는 상황까지 간다. 미셸은 반격에 성공해 테디를 반대로 죽이려는 상황이 오는데 총을 들고 지켜보고 있던 돈이 미셸의 머리를 총으로 내려쳐 상황은 일단락된다. 미셸이 기절한 사이 집으로 보안관 케이시가 온다. 테디가 어린 시절 보모로 있으면서 테디에게 몹쓸 짓을 했던 인간인데 그거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미셸과 관련해 아는 게 없냐 묻는다. 미셸의 핸드폰 전파가 집 근처에서 잡혔기 때문이었다. 테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고 지하에서는 돈이 미셸을 지키고 있었다.

 

테디는 일부러 자신의 양봉장을 보여주겠다며 케이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그 사이 미셸은 돈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자신만 풀어주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거고 경찰에 잡혀갈 일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돈은 자신에게는 테디밖에 없다면서 그가 없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진짜 외계인이라면 자신도 꼭 함선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미셸은 자기가 외계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외계인이길 바라는 돈에게 꼭 그렇게 해줄 테니 자신을 풀어달라고 한다. 그러자 돈은 형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식으로 말을 전해 달라 하더니 갑자기 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버린다. 테디는 총 소리에 놀라는 한편 케이시를 밀쳐서 벌에 쏘이게 하고 갖고 있던 삽으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해버린다.

 

바로 지하로 내려가니 미셸은 돈이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거라 한다. 테디는 분노해서 미셸을 죽이려 하는데 그를 가로막으며 엄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자기 차 안에 부동액이 있는데 겉만 부동액이고 사실은 외계인들이 연구하던 완성된 약이라서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엄마는 외계인들의 테스트를 받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이제 그게 성공한 거니 그걸 가져와서 엄마에게 주면 살아날 거라 한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테디는 부동액을 가져가 엄마가 입원한 병실에 가서 링거에 주입한다. 하지만 정말로 부동액이었고 엄마는 죽고 만다. 이 사실에 분노한 테디는 바로 창문으로 도망쳐 집으로 향한다. 이때 미셸은 돈의 옷에서 열쇠를 빼돌려 도망치려다가 테디가 잡아서 실험했던 사람들의 자료를 확인한다. 외계인이라 생각하고 잡았던 사람들의 표본 같은 걸 모아놨고 시체도 있었다.

 

미셸은 테디와 마주치자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테디를 대하기 시작한다. 테디가 오자마자 실험했던 사람 중 진짜 안드로메다인은 몇 명이었냐 묻는데, 테디는 두 명이라 답한다. 미셸은 화난 듯하면서도 자신은 진짜 안드로메다인이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왜 인간들과 비슷하게 생겼는지까지 설명해 준다. 인간들과 섞여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간처럼 되어가고 있었다는 말도 한다. 원래 지구에 공룡만 있던 시절에 자신들이 잘못해서 모두 멸종하게 되어서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다가 서로 죽여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만 방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방주 안에서 퇴화한 인간들이 유인원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인 유전자가 몸에 각인되어 있어서 외계인들은 그 유전자(자살 충동 유전자)를 없애기 위해 테스트를 해왔다고 한다. 테디의 엄마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지금은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테디의 엄마는 죽어버렸다. 사실 미셸은 그렇게 부동액을 주입하려는 걸 다른 사람에게 걸려서 테디가 잡혀가길 바라고 시킨 거였으나 어이없게도 테디는 부동액 주입에 성공하고 엄마까지 죽이고 와버린 거였다. 시간이 지나 이날이 월식 당일이었는데 테디가 외계인 황제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변함이 없었으므로 총으로 미셸을 위협해 함선까지 같이 가기로 한다.

 

미셸 실종으로 뉴스에서 떠들썩했지만 미셸이 (다쳐서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회사에 들어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미셸은 사장실에 들어가서 블라인드를 쳐서 아무도 못 보게 만든 뒤 함선으로 가려면 옷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산기에 58자의 암호를 적어야 한다며 시간을 끈다. 테디는 여차하면 터트릴 거라며 몸에 있는 폭탄 장치를 보여준다. 미셸은 알았다고 하며 우선 옷장 안에 먼저 들어가라 한다. 하지만 테디가 옷장 안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폭발음이 들리고(버튼을 누른다며 3초를 센 뒤 터진 걸 보면 미셸이 손을 쓴 게 아닐까 싶다) 테디의 머리가 잘려서 미셸에게 날아온다. 미셸은 그걸 맞고 기절해서 구급차에 실려가는데, 실려가던 도중 정신을 차리더니 다짜고짜 내려서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간다.

 

아직 현장은 아무것도 수습되지 않아 옷장 안은 테디의 남은 시체와 피로 물들어있었다. 미셸은 역겨워하면서도 정말로 옷장을 통해 함선으로 이동한다. 외계인 함선은 솔직히 허접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 안에는 또 다른 외계인들(생긴 건 외계인 보다 유인원)이 있었다. 옷도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알고 보니 미셸이 정말로 외계인 황제였다. 머리카락으로 통신을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미셸은 인류를 구하려고 테스트를 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며 다른 외계인들과 회의를 했고 결국 인간을 없애기로 한다. 지구 미니어처 같은 게 있었는데 음모론을 풍자하는 건지 지구는 평평하게 되어 있었고 그 위엔 타원형으로 막이 씌워져 있었다. 미셸은 인간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 됐다는 듯이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 막을 터트려버린다.

 

이후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 그날 한날한시에 모든 사람이 죽어버렸다. 공룡 뼈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요트 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교실, 이슬람 사원, 결혼식장 등 인간들이 있던 곳은 모두 인간의 시체로 도배되었다. 그래서 공기를 없애서 모든 생명체를 죽인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고 강아지도 살아있었고 새들도 살아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인간만 죽은 것이었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서는 꿀을 채취하는 벌의 모습을 보여준다. 테디가 살리고 싶어 했던 벌들은 살아남았다. 지구를 지켜라 원작에서는 아예 지구가 폭발되며 지구 자체를 지키지 못했다면, 부고니아에서는 모든 인간이 죽었지만 지구만큼은 오히려 인간이 사라짐으로써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새소리나 자연소리 같은 게 들려오며 더 이상 지구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원작을 모르고 봤으면 훨씬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테디의 엄마가 제약 실험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수십 개의 바늘을 꽂아놓은 형상으로 표현한 것과 테디가 제약 실험 피해자로서 미셸과 만났을 때 자꾸 하늘로 올라가려는 엄마를 겨우겨우 붙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냥 아픈 모습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약간은 몽환적이고 비유적인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릴 거 같은 영화고 사람에 따라서는 좀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부고니아의 뜻은 고대 죽은 소에서 벌들이 태어난다고 믿었던 고대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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