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더 플랫폼 (El Hoyo, The Platform), 2019 :: 꿈과 갈망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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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여러모로 설정이 흥미로워 보여서 보게 된 영화다. 일단 평점은 약간 훑고 갔는데 엔딩이 허무하다는 말이 있어서 크게 기대는 안 하고 관람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가 취향에 맞아서 아쉬운 점은 좀 약간 있긴 해도 만족스러웠다.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좀 잔인한 장면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내성이 없는 사람은 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

 

영화 시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은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가 존재한다고. 그리고 주인공인 고렝이 눈을 뜨는 그 장소가 바로 '수직 자기 관리 센터' 이른바 '구덩이'다. 수직 구조의 건물은 가운데에 ㅁ 모양의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있고 그 안으로는 하루에 한 번 음식이 배급된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 채 돈키호테 책 한 권을 가져온 고렝은 같은 층에 있는 남자 트리마가시에게 이 장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듣는다. 층에 신호등 같이 초록불이 들어오면 그건 위층에서 음식이 내려온다는 뜻이다.

 

이곳은 위에서부터 가운데 통로를 통해 음식이 내려오는데 그건 이미 위층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이다. 음식은 맨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내려가고 그게 잠깐 내려와서 멈춘 시간에만 식사를 할 수 있다. 참고로 영화 오프닝 때 그 음식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 지 모습이 나오는데 많은 요리사들이 최상급 요리를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고렝이 그 음식을 받아봤을 땐 난잡하게 먹고 남은 음식들 뿐이었다. 처음엔 그걸 보고 고렝은 역겹다며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고렝이 있는 층은 48층이었는데 한 층마다 2명이 있었으므로 총 94명의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이 내려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건물을 1년 정도 겪은 트리마가시는 48층 정도면 괜찮은 거라며 음식을 정말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고렝은 나중에 먹겠다며 사과 하나를 챙기는데 그러자마자 갑자기 미친 듯이 더워진다.

 

트리마가시는 그건 고렝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 테이블이 우리 층에 있을 때만 음식을 먹을 권리가 생기는 거라서 음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로 온도가 높아지는 것이고 음식을 버리지 않으면 타 죽을 때까지 온도가 올라갈 거라고 한다. (반대로 엄청나게 추워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결국 고렝은 사과를 한입 먹고 버렸던가 그랬다. 고렝은 트리마가시의 사연이 궁금해서 일부러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트리마가시가 자신에게 정보를 주면 그만큼의 정보를 주겠다고 말해서 듣고 싶지 않아 해도 그냥 자기 사연을 이야기했다.

 

고렝은 자발적으로 이 공간에 지원해서 들어왔다. 아마 이런 곳이었다면 절대 들어오지 않아겠지만 고렝은 단순히 6개월을 버티면 학위 하나를 준다고 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원하는 한 가지를 들고 가도 된다고 했을 때 책 한 권, 돈키호테(맨 오브 라만차)를 들고 왔다. 그는 이 공간에 들어와서 담배도 끊고 책을 읽으며 6개월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트리마가시는 자기에겐 그런 소리 없었다며 그러면 자기한테는 학위 2개는 줘야겠다고 비아냥거린다. 트리마가시 같은 경우는 자발적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는 티비 광고를 보던 도중 사무라이 맥스라는 칼갈이 제품을 봤다고 한다. 그것에 간 칼이 벽돌까지 써는 걸 봤고, 그 광고에 나온 사람들은 그 칼갈이를 가지고 인생이 바뀌었다며 호들갑 떨었다고 한다.

 

트리마가시는 여태껏 그런 게 필요 없었던 것이 음식들은 모두 잘라진 걸 사서 딱히 칼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거란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그냥 그 칼갈이를 샀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타임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광고를 했는데 이번엔 사무라이 플러스라는 칼이었다. 날이 전혀 손상되지 않는 칼이라고 광고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농락당했다고 생각해 화가 난 트리마가시는 분풀이로 텔레비전을 창문 밖으로 던졌는데 하필 그게 지나가던 불법 체류자가 맞아서 죽고 말았다. 그 벌로 트리 마가시는 정신병동에 가든지, 수직 자기 관리 센터로 가든지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정해진 기간까지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버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 가져온 건 사무라이 플러스. 바로 그 칼이었다.

 

처음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버티던 고렝도 결국 그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그래도 초반엔 위층과 아래층 사람들에게 서로 먹을 걸 잘 조절해서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하자고 했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곳의 시스템은 한달마다 바뀌는데 그때마다 층수가 랜덤으로 바뀌어서 위층에서 호화롭게 먹던 사람들도 한 달이 지나면 최하층으로 내려가 쫄쫄 굶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먹지 못 해서 죽는 경우가 많았고 위에서는 먹을 걸 다 먹고 나니 생각이 많아져서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 듯했다. 

 

그 와중에 어느 날은 위층에서 한 아시아 여성이 내려오는데 그 여자의 이름은 미히루였다. 트리마가시의 말에 따르면 그 여자는 자기 아이를 찾기 위해 매 달 내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내려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기 아이와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같은 방 층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그래도 고렝은 그런 미히루를 그냥 보내기가 안타까웠는지 손을 내밀기도 하지만 미히루는 그냥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다 아래층 남자들에게 험한 꼴을 보게 될 뻔하고 고렝이 어쩔 줄 몰라하는데 상황은 바로 정리된다. 이런 일이 아주 많았던 것인지 미히루는 순식간에 남자들을 처리해버린다.

 

이후 시간은 흘러 흘러 트리마가시와 고렝은 서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기도 하며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코앞에 다가온다. 트리마가시는 이때만큼은 신이 있기를 바라면서 잠에 들었다. 랜덤으로 층이 바뀌는 날인 마지막 날에는 수면 가스가 퍼져서 강제적으로 잠이 들고 층이 바뀌게 된다.  

 

깨어난 층은 171층이었고 고렝은 온몸이 침대에 묶인 상태였다. 그건 트리마가시의 짓이었다. 171층은 위에서 음식이 내려와도 찌꺼기 하나 내려오지 않는 층이었다. 결론적으로 죽어나가기 딱 좋은 층이라는 것이다. 앞서 층에서는 서로 꽤 친해진 모습을 보였지만 층이 바뀌자마자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트리마가시는 1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으나 그 이후로는 버티지 못한다며 (고렝은 물만 먹으며 한 달을 버티고 살 수 있다고 하지만 트리마가시는 자신은 노령이라 힘들다고 한다) 8일째부터 고렝의 살을 먹겠다고 하고 고렝의 몫까지 주겠다고 한다. 협조만 잘해주면 최대한 고렝을 치료해줄 것이라면서. 근데 그래 봤자 치료제도 없다. 

 

트리마가시가 고렝을 1주일 동안 그냥 놔두는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좀 어이없었다. 에스카르고 요리할 때 노폐물을 빼기 위해서 1주일 정도 굶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고렝에게도 적용키는 거라고 한다. 고렝은 1주일간 침대에 묶인 채로 있어야 했고 1주일이 지나자 트리마가시는 이제 못 참겠다면서 책을 읽을 때도 정신이 희미하다면서 이제 정말 먹어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칼로 고렝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고렝은 소리 지르는데 마침 그때 미히루가 음식 테이블을 타고 고렝의 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슴없이 트리마가시를 공격하고 목을 그어버린다. 미히루는 그 틈에 칼을 고렝에게 건네주고 고렝은 분노에 가득 차서 트리마가시를 난도질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리의 상처로 인해 고렝은 움직이기가 힘들어졌고 미히루는 그런 그에게 트리마가시의 살점을 잘라 먹여준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미히루는 다시 자신의 아이를 찾아 아래로 내려간다. 고렝은 살기 위해서 트리마가시의 시체를 먹으며 한 달을 버틴다. 처음에 어떻게든 이 곳에서의 체제를 바꿔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고렝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치 않아도 환경이 그렇게 사람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고 고렝의 눈앞에 있는 층은 33층.

 

트리마가시가 죽었기 때문에 이번엔 같이 있는 사람이 바뀌었는데 그녀는 이모구리라는 여자였다. 이 여자는 자신의 반려견인 람세스 2세를 데려왔다. 고렝은 그 모습을 보고 개 때문에 아이가 음식을 못 먹을 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자 이모구리는 자신은 이 건물에서 25년간 일해왔다면서 16세 이하는 이곳에 못 들어온다고 얘기한다. 이 여자는 고렝이 이 건물에 자발적으로 들어오기로 할 때 설문을 담당했던 여자였다. 이 여자가 질문을 하고 결과에 따라서 이 건물에 들어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듯했다. 

 

이 건물은 뭔가 그냥 감옥 같은 거 라기보다는 실험을 하는 곳으로 보였는데 굳이 고렝을 들여보낸 이유는 고렝이 이 건물 시스템을 바꿀 만한 사람이어서 어떻게 변하나 시험해보려고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여자도 약간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듯했고 일부러 같은 층 파트너로 고렝을 고른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렝이 음식이 내려왔을 때 그냥 먹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보인다. 이 건물에 올 때 책을 들고 온 사람은 고렝 밖에 없었다면서.. 

 

그리고 미히루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그 여자는 배우 지망생이고 마릴린 먼로는 꿈꾸는 여자라고 했다. 음식으로는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여기서 비빔밥 얘기가 나와서 뭔가 조금 반가웠다. 이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음식 메뉴에 넣기 위해서) 고렝의 경우에는 에스카르고 요리였다. 근데 막상 트리마가시에게 에스카르고 요리 취급당한 고렝이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이모구리가 본 미히루는 처음에 들어올 때 혼자였고 자식도 없었다고 한다. 이모구리는 미히루가 아이를 찾는다고 거짓말 치며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마라고 생각했다.

 

이모구리는 이 건물이 200층까지 있다면서 자신들 층 정도에서 2인분만 먹고 (다른 층도 2인분만) 내려보내면 모두가 다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른 층 사람들에게 자신이 2인분을 담아줄 테니 2인분만 먹고 또 다른 층 사람을 위해 2인분을 담아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 전부가 먹을 수 있을 거라면서. (이모구리는 자발적 연대심을 만들어서 모두가 다 같이 먹고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른 층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사람들도 위층보다 더 낮은 층에 있던 경험을 통해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 먹냐 하는 그런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는 최하위층에서 물만 먹고 한 달을 버틴다고 해도 또 다음 달에 최하위층이 걸리면 뭔가를 먹지 않는 한 100% 죽게 된다고 보면 된다. 모두 그런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먹자라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몇 날 며칠 그렇게 여자는 2인분씩 먹고 내려보내자고 말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자 고렝도 마음이 동해서 이모구리의 편에 서게 된다. 원래 고렝 자체도 다른 사람들이 굶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이라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설득이 통하지 않자 협박을 한다. 너희가 2인분만 먹고 다른 사람에게 남겨주지 않으면 음식에 똥을 싸버릴 거라고. 이건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이다. 위에서 음식으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래층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고렝의 협박이 통했고 그대로 잘 지내는 듯했으나 (참고로 이모구리는 하루는 자신, 다른 하루는 람세스 2세 이렇게 밥을 먹었다) 음식 테이블에 미히루가 내려오면서 상황이 조금 변한다. 미히루는 몸상태가 안 좋아 보였고 이모구리와 고렝이 테이블에서 옮겨서 간호해준다.

 

그 결과, 미히루는 이모구리의 반려견 람세스 2세를 먹어버렸다. 이모구리는 람세스 2세가 죽자 절망에 빠진다. 이곳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이모구리는 이제 모든 게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긴다. 이모구리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암에 걸려서 이제는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기 전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그런 곳에 반려견을 데려온 시점에서 이모구리는 생각보다 이 시스템의 실태에 대해 잘 몰랐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끔찍이도 아끼는 반려견을 그런 위험한 곳에 데려오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결국 또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고렝이 눈을 떴을 땐 이모구리의 시체가 보였다. 이모구리는 202층에서는 어차피 죽을 거라고 예감하고 자살해버린 것이다. 이모구리는 200층까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기에 더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렝은 이모구리의 시체를 보고 트리마가시와 이모구리의 환영에 시달린다. 이때 성경구절이 나오는데 성찬식 때 구절이 나온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하는 그 부분. 두 환영이 고렝에게 이모구리의 시체를 먹을 걸 종용한다. 고렝은 괴로워하다가 결국 이모구리의 시체를 먹는다. 171층에서도 아무런 음식이 내려오지 않았기에 202층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은 먹을 수 있다고 쳐도 한 달 내내 물만 먹는다면 다음 달에도 최하층이 걸릴 경우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느새 또 한 달이 지나 이번에 눈을 뜬 곳은 무려 6층! 6층은 최상층과 가까운 곳이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층수이다. 위층 사람들이 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번에 걸린 같은 층 사람은 바하라트라는 흑인이었는데 그가 가져온 물건은 밧줄인 듯했다. 처음부터 최상층에 가는 게 목적으로 밧줄은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위층인 5층 사람들에게 신앙이 있냐고 물으면서 유일신을 믿는다 이 얘기까지 서로 나왔고, 자신은 정말 맨 위로 올라가기만 할 거고 층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다. 의아하게도 위층 사람들은 올라오게 해 주겠다며 밧줄을 던지라고 한다. 바하라트는 신나서 밧줄을 타고 위로 가서 손을 잡아달라고 하는데 위층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똥을 투척한다. 진짜 말 그대로 똥(...)

 

그 바람에 밧줄은 아래로 떨어지고 바하라트도 하마터뻔 추락사할 위험에 처했는데 고렝이 타이밍 좋게 구해줬다. 고렝은 바하라트의 행동을 보고 위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매일 음식 테이블은 맨 아래층까지 내려갔다가 위층으로 초고속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바하라트는 맨 아래층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냐며 난감해하지만 고렝은 202층일 때 음식 테이블이 맨 아래층까지 갔다가 위로 올라가는 시간 타이밍을 쟀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생각한 층은 총 250층 정도.. 그래서 50층까지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으니 하루 정도는 굶어도 된다고 생각해서 51층부터 250층까지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다 나눠주고 시간이 되어 맨 위로 올라가면 관리자들에게 지금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힘으로 이런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6층에서의 편한 한 달을 버리고 그들은 모험을 한다.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음식을 못 먹게 한다. 50층까지의 사람들은 하루 정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그깟 거 내 알 바냐며 그냥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정없이 몽둥이질이 나갔다. 초반에 트리마가시가 평등하게 다 먹이려는 고렝 보고 공산주의인 거냐며 비아냥 거렸는데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느낌도 들긴 했다. 바하라트와 고렝이 아래층 평등하게 주겠다고 위층 사람들을 억압하는 모습에서 결국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하고 사람은 욕망과 이기심이 끝이 없으니 그건 이뤄지지 못할 환상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솔직히 현재 실존하는 공산주의 나라들 치고 제대로 된 나라가 있나? 윗선들이 다 해 먹는 게 현실이지.

 

어쨌든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도 서슴치 않으며 아래로 내려가던 도중 바하라트는 자신의 스승님을 만난다. 그를 현자라고 불렀는데 그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설득과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관리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이 음식 중에 제일 호화롭고 맛있는 걸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해서 다시 보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부터 고렝과 바하라트는 메시지로 쓰일 판나코타를 제외하고 아래층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분배해주기 시작한다. 내려가면서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이는데 사람마다 물건을 들고 온 게 달라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보이는 것도 같았다. 풀장 같은 것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보였고 돈이 필요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가지고 돈에 욕심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려가던 도중 고렝은 자신은 도와줬던 미히루를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녀가 거대한 몸집의 사내에게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미히루는 칼로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고렝은 음식 테이블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사내와 싸우고 바하라트는 일본도를 든 다른 남자와 싸우게 된다. 솔직히 고렝과 거대한 사내는 체격 차가 너무 커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일본도 남자와 싸워서 이긴 바하라트가 고렝을 구해준다. 근데 여기서 고렝과 바하라트 둘 다 꽤 치명상을 입었다. 바하라트도 싸우다가 일본도로 배 부분을 베였다. 정말 엉망진창이 된 그들... 

 

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는 건 정말 빨리 내려간다. 알고 보니 이곳은 250층이 아니었고 무려 300층 이상이 있었다. 음식 테이블이 빨리 내려갔던 건 층에 사람이 모두 죽어있으면 그냥 지나치고 가기 때문이었다. 최하위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비참하고 지옥 같은 풍경만이 있다. 시체들이 즐비했다. 위층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시체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먹을 게 없으니까.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서 도착한 곳은 333층이었다. 모든 것의 마지막 층.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이모구리는 미히루에게 아이가 없다고 했고, 트리마가시는 아이가 이미 죽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침대 밑에서 나온 건 누가 봐도 미히루의 딸로 보이는 아이였다. 일단 같은 아시아계 아이였고 아이라고 할만한 애는 분명 미히루의 애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히루와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 어느 게 진실이고 어느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딱 한 가지는 미히루가 진짜 엄마라면 자식을 찾기 위해 목숨 걸고 돌아다녔다는 말이 된다.

 

아이는 배가 고파보였고 결국  위에 전해줄 메시지로 갖고 있겠다 여겼던 판나코타는 아이에게 주기로 한다. 여기서 그들은 깨닫는다. 부자의 행복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부를 쓰는 것, 잘 쓰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것을. 333층에 도착해서는 음식을 갖고 있어도 추워지거나 더워지지 않았다. (참고로 33층에서 람세스 2세가 음식을 빼돌렸을 때는 바로 추워졌었다) 어찌 됐든 두 사람 다 부상도 많이 입었고 엉망인 상태였다. 고렝이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 새로운 메시지로 여자 아이를 올려야 한다는 바하라트에게 듣는다. 하지만 정신이 들었을 땐 바하라트는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한 상태였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음식 테이블에 올라탔다. 그리고 또다시 밑으로 더더욱 내려갔다. 최하층 보다 더 아래로... 그곳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음식 테이블이 맨 밑바닥에 닿은 뒤 고렝은 전달자로서 메시지(아이)를 전달하려 하는데 트리마가시는 메시지만 있으면 된다며 고렝은 아래로 내려올 것을 권한다. 시간이 되어 아이는 초고속으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고렝은 캄캄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며 아이가 올라가게 놔둔다. 아마 이미 죽은 트리마가시를 따라가는 걸 보면 고렝은 이미 죽은 상태가 아닐까, 혹은 이미 심각할 정도로 죽어가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나기에 맨 위층의 관리자들에게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잘 됐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판나코타에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요리사들을 엄청나게 혼내는 (머리카락 색으로 누구 머리카락인가까지 찾아냈다) 관리인 한 명이 있었는데 과연 그는 아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 영화는 사회에 대해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맨 위층부터 아래층은 이 사회의 계급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으니까. 부자와 가난한 자.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한 달마다 랜덤으로 그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서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결국엔 모두가 살아나갈 수 없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보통 그런 환경에 처하면 고렝 같은 이상주의자보다는 트리마가시처럼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게 당연할 거 같다. 고렝도 도중에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고렝과 바하라트는 그런 현실을 깨트리고자 편안함에 안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엔 거의 희생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그리고 미히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들이 죄다 제대로 들어맞는 게 없어 보여서 어쩌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거짓말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이모구리 같은 경우는 끝이 200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트리마가시는 미히루를 미친 살인마라고 표현했지만 고렝을 살려준 것으로 보아 그 말대로 무자비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본다. 단지 미히루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에 관해서는 여러모로 의문이 남는데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도 다 다른 듯하다. 애초에 그 건물에 들어올 때 임신해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같이 그냥 들어온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건물에서 애를 처음부터 키우기에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임신해서 들어왔을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나 싶고.. (시스템적으로도 여자에게 너무 위험하다) 16살 이하는 절대 못 들어온다고 이모 구리가 단언하긴 했지만 200층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333층이나 있었던 걸 보면 16살 이하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태까지 누군가가 그걸 타고 다시 위로 올라간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보면서 여자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난 무언가 희망을 느꼈다. 미히루 애가 진짜 살아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들떴고 어쩌면 고렝과 바하라트는 아이를 봤을 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영화에서 따지면 그 시스템을 깨부술 수 있는 희망인 것 같다. 처음 시작엔 사람은 세 종류 있다면서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라고 했지만 그 세 종류의 사람이 아닌 위로 올라가는 자라는 또 하나의 사람이 생긴 것이다.  뭐,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이 영화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에 (종교적이 느낌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드는 생각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맨 위에서도 썼지만 나는 영화 보고 나서 그에 대해 토론하거나 생각하는 게 좋은 사람이라 이 영화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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