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사라진 시간 (Me and Me), 2019 :: 꿈과 갈망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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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이 영화를 보러 간 건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요즘 코로나 여파로 볼만한 영화가 없는 가운데 내가 가는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가 그나마 이거였다. 근데 보기 전에 정보를 찾아보니 평가들이 죄다 혹평만 있어서 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런 혹평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다른 영화도 보기 전에 혹평 투성이어서 걱정됐던 영화가 막상 직접 봐보니 엄청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영화는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보기로 했다. 보고 난 다음 느낌은 진짜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그나마 나는 보기 전에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다 생각을 하고 가서 이 정도 생각이 들었지 전~혀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봤으면 더더욱 박한 평가가 나올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시작은 박형구(조진웅)가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김수혁이 학교에서 진규라는 학생과 대화하는 게 나온다. 수혁은 학교 선생이었고 학교에 무언가 물건을 두고 온 진규에게 수혁이 무엇을 두고 간거냐며 묻다가 사물함에 대해서 대화하는데 진규는 사물함은 자기 프라이버시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후 수혁은 부인 윤이영과 함께 있는 모습이 나온다. 웬만하면 연기에 관해서 별 말 안 하는 편인데 이 부부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좀 연기가 과장되어 보이는 면이 있어서 좀 어색해 보였다. 어쨌든 둘은 사이가 좋은 부부로 보였는데 둘이서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이영이 수혁의 엄마의 흉내(?) 같은 걸 내고 수혁이 정말로 엄마를 대하는 것처럼 하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수혁과 이영의 친구들이 둘의 집까지 놀러 왔고 둘은 일부러 친구들이 자고 가지 못하도록 가지도 않는 여행을 가는 척한다. 이것과 관련한 이유는 금방 나온다.

 

초반부터도 진규의 아빠인 정해균이 두 부부가 밤에 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목격하는데 두번째 집에 갔을 때 일이 터지고 만다. 해균은 이영이 펑크 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걸 우연히 보게 된다. 해균은 시내에 나가는 겸 펑크 난 자전거를 고쳐주고 밤에 집 앞에 갖다 주겠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안 수혁이 유난히도 다음날 갖다 주라고 해균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하지만 해균은 끝내 밤에 집 앞에 자전거를 갖다 주는데 그때 뭔가 이상한 소리에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이영에게 엎어치기 메치기 같은 걸 당하고 헐레벌떡 도망가려 한다. 그걸 본 수혁이 필사적으로 해균을 붙잡고 사실은 아내가 밤마다 빙의당하는 병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번엔 역도산에게 빙의가 돼서 그런 행동을 한 거라며 부디 비밀로 해달라고 한다. (밤에 친구들이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한 것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건만 해균은 이장인 두희에게 이장이니까 알려주는 거라며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라고 말을 했지만 결국 그 소문은 마을 전체에 퍼지고 말았다. 그 결과 이영은 밤마다 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2층 방이 있었는데 그 2층으로 가는 계단 앞에 철창을 달아서 자물쇠를 잠그게 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하다고 해서 그렇게 내린 결론이었다. 이 비밀을 처음 알게 된 해균이 밤에 열쇠를 잠그고 아침마다 갖다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혁은 도저히 아내만 그렇게 재우는 게 편치 않았고 결국엔 둘이서 같이 갇혀서 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열쇠를 담당한 해균이 동창을 술자리에 불러내 하룻밤을 보내는 사이 수혁, 이영 부부의 집에 누전으로 인해 불이 난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질식사로 사망하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 찾아온 게 경찰 박형구였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를 밤마다 가둔 것 때문에 혹시나 자신들이 잡혀갈까봐 걱정하고 그 일에 관해서 숨기려 한다. 형구는 그런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기고 여기저기 조사를 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해균과 두희가 싸우기도 하고 그걸 형구가 목격하기도 한다. 조사 과정에서 부부가 화재로 죽은 날 해균이 유부녀 동창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형구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조사를 하려 하는데 막상 찾아가니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건 한 노인의 생일상이었다. 그 노인은 자신이 부부를 가둔 것이라고 하며 자신만 잡아가면 된다 하는데 그래도 생일상을 차렸으니 오늘만큼은 먹고 즐기라 한다.

 

형구는 일할 때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붙잡는 바람에 결국 같이 술을 마시게 된다. 거나하게 취한 형구는 잠에 들게 되는데 자고 일어난 후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사라진 시간' 그 시간을 형구가 겪게 되는 것이다. 형구가 형사였던 시간이 전부 모조리 사라졌다. 형구가 전화소리에 의해 잠이 깨는데 전화를 받으니 형구 보고 선생님이라 부르며 왜 학교에 나오지 않냐고 한다. 형구는 그저 어리둥절하다. 자신이 잠에서 깬 건 수혁의 집이었다. 수혁의 집은 화재가 나기 전처럼 깨끗하고 멀쩡했다. 철창문도 그대로 달려있었고 해균이 문을 열어주러 왔다.

 

이후 모든 사람들이 형구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 형구는 분명 경찰로 이 마을에 찾아온 거였는데 모두가 그를 선생님이라 한다. 지금 형구의 입장은 마을에서 살다 죽은 수혁의 입장이었다. 모든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는 혼란스럽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기기 전 집 앞에서 주차를 하다가 어느 차를 긁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 차에 놔뒀었는데 집을 나올 때 다시 그 메모를 들고 왔었다. 그런데 그 종이가 그대로 주머니에 있었다. 그래서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는데 없는 전화번호라고 나온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형구는 자신의 집에 찾아가 보는데 집에는 전혀 모르는 아저씨가 살고 있고 옆집 아줌마도 형구를 알아보지 못한다 (원래 주차하다 차 긁었을 때 봤어도 모른 척해준다고 말할 정도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학생 기록 조회 같은 걸로 자신의 두 아들의 정보를 찾아보려 하지만 없는 정보라고 나온다. 아내의 이름은 전지현이고 아들 둘의 이름은 박지성과 박주영이어서 그 정보를 찾는 사람은 오히려 형구를 이상한 사람 취급 한다. 형구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며 해균과 이에 대해 상담을 하던 형구는 꿈에서 깨려면 극단적인 공포를 유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구는 눈앞에 있는 해균을 때려눕히고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 비닐하우스가 해균의 비명소리와 불타는 연기로 가득해지고 결국 해균은 시체로 나오는 건가 싶었는데...! 들것에 실려 나온 건 해균의 시체가 아닌 불탄 고라니의 시체였다. 분명 죽었어야 할 해균이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나오고 형구와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 못 한다.

 

더더욱 혼란스러워진 형구는 해균의 소개로 (해균의 동창이 정신과 의사)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다. 형구가 해균을 죽인 건 꿈으로 치부되는 듯했고 꿈은 욕망의 쓰레기와 같다는 식의 말을 해준다. 상담이 끝나고 동창과의 술자리가 있었는데 원래 형구는 그 자리에 가지 않으려다가 형사 형구 때 자신의 아내였던 지현이, 동창 미경으로 참여한 걸 보고 같이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된다. 미경은 해균과 바람을 피웠다는 경찰 서장의 아내였다. 하지만 현재 눈 앞에 있는 여자는 분명 형구 아내의 얼굴 그 자체였지만 역시 아내는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아들도 두 아들이 있다고 한다. 형구는 아내의 빈자리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아내에게 그동안 잘 대해주지 못했다는 걸 반성하게 되었다. 형구는 미경의 아들들을 걱정하는데 (어쨌든 자신의 아들처럼 느껴지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아들들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 형구는 씁쓸함을 느낀다. 박봉이라고 하더니 결국 경찰 서장 아내가 되었다며 아내의 좋아보이는 모습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신이 있던 자리가 사라진 것에 슬픔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였던가. 형구는 처음에 생일 잔칫상에서 송로주를 먹고 잠든 뒤 깨어났을 때 이 모든 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 술에 실마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주구장창 송로주를 마신다. 이 송로주 마시는 장면이 꽤 길어서 아, 화면 언제 바뀌지? 했다. 근데 송로주를 마신 뒤 상황이 뭔가 바뀌었으면 좋았겠지만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단지 집에 있는 철창문을 떼어내고 해균에게 미경과 다시 만나지 말라고 경고 한다. 둘이 바람을 피웠던 걸 이미 알고 있는 형구를 보고 해균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의아해한다. 형구는 진규와 학교에서 대화를 하게 되는데 진규는 커서 경찰이 되겠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이 되려는 이유가 뭔가 큰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시험 점수가 높지 않아도 되기 쉬워서 그런 거였다. 그리고 사물함에 대해서 형구가 궁금해하자 진규는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냐며 (영화 초반에 수혁에게 얘기) 프라이버시라고 한다. 진규가 나간 뒤 형구는 자신이 형사였다고 하며 핀 같은 거로 자물쇠를 따서 사물함 안을 뒤져보는데 그 안에는 찢어진 가족사진 액자가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외국인 엄마와 이혼을 했든 아니든 모종의 이유로 헤어진 듯하다.

 

이후 형구는 학교에 휴직계를 낸 듯했고 어느 온천으로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마을 뜨개질 강사 초희와 만난다. 초희는 영화 초반 이영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던 뜨개질 강사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초희가 형구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절의 기와에 소원을 적고 형구가 돈을 내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그때 주머니에서 형구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떨어지고 그걸 본 초희는 자신이 2년 전에 쓰던 전화번호였다며 형구에게 스토커 아니냐며 은근히 형구의 마음을 떠본다. 형구는 그 번호는 15년 전부터 쓴 거였지만 일부러 2년 전에 바꾼 전화번호라고 말을 바꾼다. 둘은 온천탕에 잠시 같이 들어가는데 그곳에 수혁과 이영이 들어오고 수혁이 이영에게 자신이 어렸을 적 가난했던 시절 얘기를 꺼낸다 (영화 초반과 똑같은 대화). 

 

이후 초희와 형구는 집에 가고 형구가 음식을 해준다. 같이 훈훈하게 식사를 하던 중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되고 형구는 자신이 결혼을 했'었'다고 한다. 초희는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어째서인지 초반 이영의 이유와 같다. 밤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빙의에 걸리는 병에 걸렸다는 것. 그 말을 들은 형구는 힘들겠다고 공감을 해주고 그런 초희는 눈물을 쏟는다. 그 뒤 "참 좋다"라는 대사가 나오며 맨 처음 영화 장면처럼 형구가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뒤에서 "... 설마?". 엘리베이터에서는 "찝찝하게 끝났는데" 그런 반응들이 들려왔다. 솔직히 나도 딱 보고 나서는 "?????" 물음표가 수십 개는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가 뭔가 더 확실한 끝맺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없이 끝나서 많이 아쉬웠다. 이게 형사 형구의 선생이 된 꿈 이야기인지, 망상 이야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형구는 원래 형사가 아니라 선생이었던 건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장자의 호접지몽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굳이 말하자면 화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호접지몽이었다. 사람마다 해석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결말이 다르게 날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는 경찰 형구가 술을 먹고 기나긴 꿈을 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본 엄마 같은 경우는 형구가 원래 선생이었고 자신이 갖지 못한 가족이나 그런 것들에 대한 꿈을 망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서 확실히 여운은 남긴 했으나 결말 자체가 모호한 열린 결말이다 보니 그 점이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도 영화 자체는 몰입도가 좋아서 몇몇 지루한 부분 제외하고는 재미있게 봤지만 역시 결말을 너무 관객에게 알아서 생각하라고 넘겨버린 듯한 부분이 혹평을 받는 요소가 된 게 아닐까 싶다. 호불호는 매우 심하게 갈릴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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