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결말 포함)
주 장르는 드라마인 거 같지만 스릴러가 가미된 거 같아서 궁금해서 보게 되었다. 사실 보기 전에 평들이 극심하게 갈려서 약간 고민되기도 했다. 근데 또 끝이 괴기하다는 말도 있어서 궁금해졌다. 내용은 제목처럼 말 그대로 오후 네시마다 찾아오는 손님 때문에 한 부부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여러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왜 사람들이 후기에 내면의 본성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내 감상평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가 나쁘지 않았다. 영화를 같이 본 엄마도 안 졸으셨고, 내용이 궁금해서 몰입해서 보셨다고 한다. 원작이 소설이라는데 소설 내용도 좀 궁금해졌다. 리뷰를 좀 찾아서 읽어보다 소설 내용도 대충 봐버렸는데 영화와 엔딩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편 엔딩이 더 좋은 거 같다.
영화는 한적한 공간에 있는 집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 정인은 나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를 말하며 자신은 자기 자신을 알지 말았어야 했다고, 차라리 모르는 무지 상태가 나았을 거라고 읊조린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직전이었다. 그래서 정인이 그런 한탄을 하는 거였다. 이후 장면이 바뀌며 정인이 마지막 강의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정인은 안식년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내 현숙과 함께 차를 타고 가려는데 운전을 잘못해 트럭을 박게 된다. 좋게 좋게 말하고 오라는 현숙의 말을 듣고 정인은 트럭으로 향하는데 차 주인은 서로 잘못한 거니 대충 넘어가자고, 나중에 다른 소리나 하지 말라고 한다. 운전석에 돌아온 정인은 차 주인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현숙은 그럼 경찰에 신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데 정인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 같다면서 선의를 베풀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현숙은 정인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면서 그 차 주인이 오히려 운이 좋은 거였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액땜했다 생각하며 앞으로 살아갈 집으로 향하게 된다. 꽤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데 도중에 딸처럼 생각하는 제자 소정에게 전화가 온다. 소정은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두 사람에게 안부 인사차 전화를 건 것이었다. 현숙은 이사 첫날부터 소정에게 연락이 온 게 느낌이 좋다며 환영했고 매우 반가워했다. 운전 끝에 두 사람은 집에 도착하는데, 집 앞엔 강이 흐르고 옆집엔 까마귀가 울어댔다. 사람이 사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로 황량해 보이는 옆집이었다. 두 사람은 옆집에 찾아가 인사를 하려 했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정인은 계속 집에 찾아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편지를 남기기로 한다. 옆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 편한 시간에 차 한 잔 먹자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빈 집인 줄 알았던 옆집은 불이 켜진다.
정인과 영남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도를 하고 명상을 했는데 이날 오후 4시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4시가 되자마자 누군가가 격하게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가보니 무뚝뚝한 표정의 초로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이웃집에서 왔다 말했고 정인과 현숙은 정말 만나보고 싶었다고 반겨 하며 거실 소파로 안내한다. 처음 보는 그에게 정인은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의사시라면서요?” 이렇게 물어보면 “그렇소” “비 많이 올 때 물이 넘치진 않나요?” “괜찮소” “제 이름은 이정인입니다.”“…….” 이런 느낌이다. 시종일관 단답이다. 뭔가 길게 말해야 할 거 같은 내용이면 말을 아예 안 해버린다. 현숙이 가져온 차만 홀짝이며 죽치고 앉아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6시가 되자, 마치 자동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남자는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남자의 행동에 어리버리 타는 부부의 모습이 한편으로 웃겨서 피식하게 됐다.
부부는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한다. 너무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또 이런 식으로 오진 않겠지 하고. 다음 날 밖으로 나가 화원에 들른다. 예쁜 꽃들과 식물들을 한가득 사서 차에 실었다. 식당에 가서 스테이크도 썰며 서로에게 먹여주는 등 오붓한 한때를 보냈다. 자주 이렇게 나와서 먹자고 하며 집으로 돌아와 식물들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그 뒤 한숨 돌릴 겸 다도를 하고 명상을 하는데 오후 4시가 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의 주인은 옆집 남자였다. 또다시 그는 당연한 듯이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는다. 현숙은 또 허둥지둥 차를 만들어 내온다. 당황하는 한편 또다시 침묵이 찾아오는 게 싫었던 정인은 남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남자는 심장외과 의사라고 했다. 그는 아내와 같이 사는 듯했고 아내는 건강하다고 했다. 이번에 식물을 사서 좀 꾸며봤다는 말에 별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도 계속되는 단답에 대화가 얼마 안 가 끊기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그를 골려주고 싶었던 정인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냐고 질문한다. 단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을 하면 당황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6시가 거의 다 되어가서야 정인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한 거 같다며 사과했다. 순서는 헷갈리긴 하는데 그냥 쓰자면 정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남자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정인은 6시에 남자가 나가려고 할 때 붙잡아 재차 이름을 묻는다. 그러자 그는 짜증 난다는 듯 자신의 이름을 육남이라고 말하고 가버린다. 이날 밤이었나? 정인은 침대 옆에 육남이 있는 악몽도 꿨다. 새벽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육남이 진짜 의사인지 검색해 보기도 한다. 정인은 그렇게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났다.
오후 4시가 되어가자 현숙은 육남이 또 오면 어쩌냐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4시 10분 전에 집에서 나가버리자는 거였다. 다음 날 3시 50분 두 사람은 집에서 나가 숲을 거닐었다. 그런데 하필 비가 쏟아져내렸다. 비를 피할만한 곳이 있어서 잠시 쉬어가게 되긴 하는데 현숙이 엄청 추워한다. 잠시 뒤 정인은 비가 그쳤다며 (근데 영화에서 소리는 빗소리가 나고 화면에서 비도 내리고 있어서 이상했다;;)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현숙은 6시가 지난 뒤에 들어가자고 한다. 집으로 가보니 오랜 시간 그 앞을 서성였는지 비에 젖은 발자국이 문 앞에 많이 찍혀있었다. 그걸 보고 현숙은 기분 나빠한다. 비를 맞은 탓인지 현숙은 기침을 해댔다. 감기에 걸려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음 날이 찾아왔다. 현숙은 자신이 아프니까 이번엔 나가지 말라고 한다. 그냥 육남이 문을 두드려도 모른 척하라고 한다. 정인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거짓말을 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숙은 그런 또라이랑 만나기 싫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정인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이 좀 심하지 않냐며 아직까진 선한 모습을 유지했다. 현숙은 제발 이번엔 나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차라리 아내를 간호하다가 잠들어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치자고 한다. 그렇게 현숙이 애원하는 동안 오후 4시가 되었고 또다시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모른 척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욱더 격해지고 심지어 문고리를 잡고 흔들고 아예 몸통 박치기를 하는 수준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었던 정인은 현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줘버린다. 그러자 육남은 자기 집인 것처럼 소파에 옷을 내던지고 지정석이라도 된 듯 항상 앉는 소파에 앉더니 화를 낸다. 비가 와서 땅이 젖었는데 나간 발자국이 없어서 안 나간 걸 알고 있었다 한다. 거기다 어제는 집을 비우지 않았냐며 왜 나갔냐는 식으로 타박한다. 정인은 아내가 아파서 위층에 있어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아내가 아파서 간호하러 위층으로 올라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차를 못 내주겠다는 말이냐며 도리어 육남이 화를 낸다. 어이가 없었지만 정인은 끝까지 친절한 사람을 유지한 채 차를 내왔다. 육남이 차를 마시는 동안 정인은 잠깐 2층에 있는 현숙에게 찾아갔고 현숙은 육남과 정인이 단둘이 있는 게 싫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위로 올라오는 계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현숙은 공포에 떨며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데 다가온 육남이 현숙의 머리에 손을 대본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하는 말이 “부인은 아픈 게 아니오!” 이런다. 현숙은 이에 질세라 기침을 하는데 육남은 계속 아픈 게 아니라고 하더니 그냥 레몬 차를 먹으면 될 거라고 한다. 거기다 자신이 밑으로 내려가는 조건이 정인과 함께 내려가는 것이라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인은 육남과 함께 밑으로 내려가는데 순간 그를 밀쳐버린다. 육남은 계단에서 굴러버리는데 이건 정인의 상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낀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다짐하듯이.
이후에도 계속 육남은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왔다. 하도 찾아오니 그가 소파에 앉아있어도 청소도 하고, 자기 할일 다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한번은 정인이 자신이 강의하는 책 같은 걸 펼치고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이것도 모르시나? 하고 속을 긁기도 하는데 육남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인이 그와의 대화는 벽하고 대화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똑같은 오후 4시의 일상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육남이 “싫소!”라고 말한다. 그건 부인도 집에 데려오라는 제안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착하고 곱다고 했다. 현숙은 육남의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4시 말고 저녁 7시에 와달라고 부탁한다. 계속되는 부탁 때문인지 육남은 6시도 안 됐는데 집에 가버린다.
현숙과 정인의 계획은 식사 자리에 초대해 서로의 상황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었다. 현숙이 육남의 아내와 생각보다 잘 맞아서 친해지면 어쩌지, 너무 양식만 하는 거 아닌가 한식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데 정인은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육남이 집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약간 계획의 느낌이 너네랑 우리는 급이 다르다 이런 느낌으로 밀어내는 거였다. 그렇게 현숙은 저녁 식사 준비를 정성껏 한다. 일부러 와인도 몇 개 사놓았다. 케이크도 만들었다. 심지어 옷도 정장으로 쫙 빼입고 그들이 7시에 오기를 기다렸다. 웃긴 게 부부는 오히려 4시에 육남이 안 오니까 불안함을 느낀다. 저녁 7시가 되자마자 육남 부부가 등장하는데 육남이 데려온 부인은 덩치가 정말 산만했다. 거기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일반 사람들보다 약간 지능이 낮은 것 같아 보였다.
식사를 하려는데 육남의 아내 세라가 무작정 먹으려고 하니 육남은 기도를 하고 먹으라며 중지시킨다. 기도를 끝내자마자 세라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는다. 현숙은 평소에 먹는 음식이 뭐냐 질문하는데 육남은 그냥 “밥”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없냐 하는데도 그냥 “밥”을 먹는다고 할 뿐이었다. 디저트로 초코 케이크를 내오는데 세라는 한 조각이 아니라 한 조각을 뺀 전체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한다. 육남은 그런 세라를 말리면서 “더 먹으면 안 돼!!!!” 하며 고함을 질렀고 현숙은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자기네들 생각 말고 그냥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라고 한다. 하지만 육남은 그러면 안 된다고 화를 낼뿐이었다. 현숙이 그럼 와인 한 잔을 하는 게 어떠냐 권하자 술도 안 된다며 화를 낸다.
여차저차 저녁 식사 시간은 끝났고 정인은 나름대로 육남을 골려줬다고 생각한다. 베란다에 나가 정인이 담배를 피우는데 맞은편 베란다에서도 육남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로 말없이 담배를 피우다가 들어가려 하는데 육남이 어딘가로 전화하는 게 보인다. 근데 갑자기 정인의 집에서도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정인은 육남이 전화한 걸지도 모른다며 현숙에게 말하고, 현숙은 어떻게 육남이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아냐며 불안해하며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화에 정인이 전화를 받는데 전화를 건건 육남이 아니라 제자 소정이었다. 캐나다에서 잠깐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오랜만에 부부를 만나고 싶다는 거였다. 현숙은 반겨 하면서 다음 날 오후 3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뒤이어 정인이 4시에 그 양반 오는데?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인다.
혹시 몰라 정인은 육남의 집 앞에서 대기하고 현숙은 집 앞에서 소정을 맞이해준다. 현숙은 한정식집에 예약을 해놨으니 저녁에 나가서 먹자고 한다. 소정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좋아한다. 두 사람은 집에 들어가 정인을 기다리는데, 전화로 정인은 육남이 집에 없는 거 같다 한다. 현숙은 소정이 정인을 엄청 만나보고 싶어 한다며 그냥 집으로 오라 한다. 하필 그때 바깥에서 육남의 차가 부부의 집 앞으로 들어왔다. 정인은 뒤늦게 집 앞으로 달려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4시가 되자마자 집 문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정은 문을 열어주었고 육남은 또다시 집안에 눌러앉아버렸다. 소정은 어색한 표정으로 누구시냐고 부부에게 넌지시 물어보지만 말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시간만 흐른다. 아무 말 없이 시간만 죽치고 있는 걸 견딜 수 없었던 소정은 삐죽 데다가 육남을 보며 두 분에게 엄청 중요한 분인 거 같다고 하며, 친구나 만나러 가겠다며 나중에 다시 들르겠다고 말하며 나가버린다. 부부가 딸처럼 생각하는 제자인 것치고 생각보다 별거 아닌 관계처럼 보였다.
현숙은 나가서 소정을 붙잡아보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어느 타이밍에 이 질문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정인이 육남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온 거냐 질문하니 "없소!" 이랬었다. 초반엔 부부에게 궁금한 거 없냐 했을 때도 "없소!" 이랬고. 어느 상황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6시가 되어서야 육남은 집에 돌아갔고 정인과 현숙은 우울해졌다. 하지만 이젠 정인도 분노가 극에 달했다. 더 이상 육남이 마음대로 하게 놔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체면과 배려를 따졌던 정인은 다음 날 4시가 되어 문을 두드리자마자 "꺼져! 꺼지라고!"를 외치며 육남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육남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계단에서 나동그라졌고 그 모습을 본 정인은 생각보다 쉽다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그동안의 쌓인 분노를 담아 사정없이 발길질했다. 현숙은 그 모습을 보며 놀랐고 폭력은 안 된다며 정인을 말린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세라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정인은 소정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다 설명하고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도 다 말하라고 한다. 정인이 이런 짓을 저지른 기폭제가 된 건 소정이었던 거 같다. 그동안 자신은 배려심이 있고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왔지만 소정에게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자 그로 인해 본성이 터져 나온 느낌이었다.
이후 그동안의 일들이 거짓말인 것처럼 더 이상 육남은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후 4시가 되면 식은땀이 나고 불안해지는 등 노이로제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인은 육남이 찾아오기 이전보다 더욱더 육남이 싫어졌고 더 죽이고 싶어졌다. 어느 날 밤 육남은 세라의 발을 씻겨줬다. 왜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나왔나 싶었는데 그 이후 이어지는 장면을 생각해 보니 육남의 행동이 사고가 아니라 자살 시도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쩌면 발을 씻겨주는 건 평소의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갑자기 넣어준 게 의미심장해보였다. 새벽 시간대로 보이는데 육남은 잔디 깎기 기계인지 뭔지 시동을 걸어댄다. 엄청 오래된 기계인지 소리도 엄청 컸다. 그러다 합선이라도 난 건지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에서 엄청난 양의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육남은 연기가 가득 차자 문밖으로 나가려다가 (자물쇠가 잠겨져 있어서 못 나갔다) 그냥 자동차 안으로 들어와 숨을 내쉰다. 근데 그 상태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난 이래서 사고가 아니라 죽을 생각이 있었구나 싶었다. 이어지는 정인의 행동을 보면 충분히 탈출하려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시동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정인은 육남의 차고로 찾아가 봤다가 연기가 자욱한 걸 보게 된다. 들어갈 방법이 없어서 창문을 깨서 안으로 들어간 뒤 자동차에 들어가서 그대로 문을 들이받아 탈출한다. 이후 육남을 바깥으로 꺼낸 뒤 잠시 고민한다. 그대로 놔두면 육남이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인은 잠깐 동안의 고민 후 119에 신고해 그를 살리는 걸 선택한다. 하지만 금세 또다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를 그대로 죽게 놔뒀으면 더 이상 자신의 일상을 침범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정인은 그가 자살 시도한 거라면 혼자 죽는 게 아니지 않았을까 하여 세라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 안엔 온갖 시계가 잔뜩 있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어두운 방은 설거지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모든 게 엉망 같았다. 육남에겐 자식이 없다고 했었는데 가족사진엔 날씬했던 시절의 세라 모습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와 함께 찍은 육남이 있었다. 무언가의 사고로 인해 아들은 죽고 세라가 변하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시끄럽게 들리는 세라의 코 고는 소리에 정인은 위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세라의 코 고는 소리는 마치 짐승과도 같았다. 세라가 침대 하나를 꽉 메운 채로 잠든 모습을 보며 육남이 그동안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한 건가 혼자 납득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라를 지켜보던 정인은 잠이 들어버렸고 문득 잠이 깼을 땐 아침이 되어있었다. 잠에서 깬 세라에게 자신이 육남의 자살을 말렸고 병원을 보냈다 말해준다. 생명에 지장도 없다 말해줬는데 그 방을 나오면서 정인은 육남이 자살시도했다 했을 때 세라가 웃은 것 같았고, 살았다고 하니까 슬퍼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건 정인이 멋대로 추측한 것이었다. 세라는 그런 표정을 짓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살 시도를 했다는 말에 슬퍼하는 거 같았다. 세라는 집에서 혼자 울부짖듯 울었다.
육남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정인이 집에 데려다주기로 한다. 차 안에서 정인과 육남이 대화를 하는데 자신이 그렇게 됐을 때 정인이 살릴지 말지 망설이지 않았냐 한다. 육남은 이미 자신을 살린 이상 평화는 깨진 거라고 한다. 자신은 의사라서 사람 죽이는 방법은 엄청 많이 알고 있다고도 협박 같은 말도 한다. 둘은 차 안에서 티격태격하는데 육남이 차 핸들 막 돌려서 강에 빠질 뻔하다 겨우 나무에 박고 살아남았다. 정인은 육남을 살린 걸 후회한다. 그리곤 사람은 살던 대로 죽는 거라 하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숨 막혀서 질식사하려던 게 아니냐 한다. 부디 자살 시도 계속해서 성공하라 하는데 육남이 막 엄청나게 웃어댄다. 영화에서 처음 보는 육남의 웃음은 기괴함마저 느껴졌다. 정인은 그런 육남에게 집에 다신 찾아오지 말라면서, 다시 찾아오면 찢어 죽이겠다고 한다. 그러자 육남은 어이없게도 "고맙소" 이러면서 맨날 찾아가겠다고 한다. 반드시 그 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자신이 한 말은 꼭 지킨다고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에 정인은 분노한다.
집으로 돌아간 뒤 밤이 됐을 때 정인은 육남의 집에 몰래 들어간다. 육남은 정인이 찾아온 걸 봤으면서도 일부러 아는 척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마치 자신을 죽이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국 정인은 쿠션으로 육남의 얼굴을 짓눌러서 죽여버린다. 정인은 육남을 죽이자마자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세라가 지켜봤다. 이후 정인과 현숙은 세라 집에 가서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육남이 죽은 건 잘 넘어갔던 모양이다. 현숙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같았다. 다시 영화 첫 시작에서 나왔던 장면이 나온다. 정인이 나 자신을 알지 말아야 했다며, 책을 읽다 후회하며 잠드는데 세라가 정인을 지켜본다. 그러더니 그 거대한 몸집으로 앉아서 정인의 얼굴을 깔아뭉개버린다. 정인은 숨이 막혀서 발버둥 치고 시계가 4시로 바뀐 뒤 영화는 끝이 났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였다. 배려심과 예의를 가장해 오만함을 감추고 있었던 부부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정인. 그리고 끝까지 완전한 의도를 알 수 없었던 육남. 개인적으로는 육남이 세라를 떠나 잠깐 동안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그냥 두 시간마다 부부의 집에 피신(?)해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끝까지 정인을 몰아넣었던 건 정인의 손으로 차라리 자신을 죽여줬으면 하는 바람도 약간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도 그냥 내 생각일 뿐 어떤 게 진심일지 알 수 없지만 정인이 육남의 집에 찾아왔을 때 못 본 척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정인이 끝까지 제정신을 붙잡고 있었다면 영화 마지막의 비극은 없었을까. 정인의 본성을 따지고 봤을 때 어쩔 수 없었던 수순인가 싶기도 하다.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영화인 것 같은데 초중반 답답함을 참아낼 수 있고(그래도 나름 웃긴 포인트도 있다)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면 봐도 나쁘지 않은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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