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결말 포함)
일단 공포 영화라서 봤는데 생각보다 평들이 안 좋아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포 영화는 예고편을 미리 보면 재미가 감소해서 예고편도 본의 아니게 보게 된 아주 짧은 예고편 하나 말고는 전혀 안 봤다. 오컬트로 빠진다는 얘기를 봐서 사건이 완전히 인간에 의한 사건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보긴 봤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행이 엄청 느리고 사건이 후반에 다 몰려서 나오다 보니 중반이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웬만해서는 영화 보면서 졸리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이 영화는 약간 졸음이 올 뻔했다. 근데 또 영화가 재미없었냐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 영화 자체는 좀 지루했지만 영화 보고 나서 해석 찾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대 여섯 장면 정도 밖에 본 거 같은데 (화면 자체가 좀 어둡기도 했고) 감독이 숨겨놓은 악마 장면이 15개 이상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숨겨져 있는 요소를 좋아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봐서 아쉬웠다.
영화는 흥겨운 노래로 시작하다가 (가사 내용이 입에 루비가 떨어진 소녀 뭐 이런 비스름한 내용이었다) 4:3 비율의 화면으로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 기존 스크린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의 프레임이지만 화면을 가득 메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림을 그리던 한 소녀는 바깥에 차가 온 걸 보고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옷을 챙겨 입은 뒤 밖으로 나간다. 차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이 낸 듯한 "뻐꾹"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녀는 차로 다가가다 말고 소리의 진원지로 향하는데 어째선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금세 시야 안을 가득 채우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는데 솔직히 그냥 남자보다도 여장한 남자 같은 모습의 남자였다. 그는 생일 얘기를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은 롱레그스를 써서"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난 살인마가 롱레그스 편지를 써서 그런 건가? 했는데 인터넷에서 보니 다른 번역으로는 "오늘은 내 다리가 길어서 허리를 굽혀야만 말을 걸 수 있다"라고 쓰여있어서 그런 의미였구나 했다. 해석을 중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본 번역이 더 이해 갔다. 처음엔 남자 얼굴이 하관만 나왔었는데 갑자기 하얗게 분칠한 남자 얼굴이 화면 가득 들이밀어지고 다른 화면으로 전환된다.
1장 그의 편지
FBI 요원인 하커 리는 요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번에 맡은 임무는 범인을 찾는 거였는데 2인 1조로 정해졌다. 우선 파트너인 피스크와 함께 어느 마을에 내렸다. 그는 자신이 문을 두드리면 뒷문으로 하커가 와달라고 했다. 피스크가 문을 두드린 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하커는 문득 반대편 집 지붕을 쳐다보며 이곳에 범인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를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피스크는 직감으로 보고를 올릴 순 없다며 그 집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조사할 게 있어서 왔다고 하는데 문을 그 말을 하자마자 바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왠지 모르게 이 장면은 그렇게 총 맞을 거 같다는 예상이 들어서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하커는 그 상황에 겁을 먹으면서도 범인을 찾기 위해 아무도 없는 황량한 집 안을 거친 숨을 내쉬며 돌아다닌다. 보고도 안 하고 혼자 돌아다녀서 답답했다. 하커가 위층으로 올라가니 한 남자가 양손을 들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FBI 측은 하퍼가 직감만으로 범인을 찾아낸 걸 보고 일종의 테스트를 하는데 이 테스트 결과를 보고 상관인 카터는 하퍼가 반은 초능력자인 것 같다고 한다. 테스트는 이상한 화면들이 자꾸 지나가고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거나 보이는 숫자를 말하는 거였는데 거기서 8개를 맞췄고 8개를 틀렸다고 한다. 이거 때문에 하퍼는 30년간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을 맡게 된다. 그건 바로 14일이 생일인 9살짜리 딸을 둔 가족의 아버지들이 딸을 포함 가족들을 전부 살해하고 마지막엔 자살을 한다는 사건들이었다. 제각각 가족은 다르지만 30년간 그런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영화는 1993년 시점이다. 살해당한 가족들에게는 전부 롱레그스라는 서명이 남겨진 편지가 있었는데 롱레그스라는 서명 말고는 전부 암호문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맡게 된 뒤 하커는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사건에 몰두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짜와 사건 사진 등을 바닥에 늘어놓고, 신발만 벗고 베개도 없이 바닥에서 자다가 카터가 깨우니 그제야 일어날 정도였다. 카터는 목도 마시고 애도 탄다며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는데 하커는 술을 마실 생각이 없다고 한다. 카터는 하커가 얘기하는 동안 자신이 마실 거라며 데려간다. 하커는 자신이 조사한 결과 롱레그스 사건은 집에 침입 흔적이 없고 나간 흔적도 없다면서 이걸 혼자 저지를 수가 없다고 한다. 결론은 롱레그스에게 조력자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이야기를 듣던 카터는 시간을 보더니 집에 갈 시간이 됐다고 한다. 하커는 술을 먹은 카터 대신 운전해서 집에 데려다주는데 카터가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더니 하커가 자기 부인과 딸을 만나고 가야겠다고 한다.
하커는 굳이 내가 만나러 가야 되냐는 식으로 말하지만 결국 카터의 집에 가게 되었다. 집에서 카터의 아내 안나와 딸 루비가 반겨준다. 얼떨결에 하커는 루비의 방을 구경하게 되었다. 루비는 하커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커를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고 하커도 승낙했다. FBI 여자 요원으로서 무섭지는 않냐 질문하는데 하커는 무섭다고 한다. 원래부터 그게 꿈이었냐 하는데 원래 꿈은 배우였다고 한다. 그러자 루비는 배우는 인생을 망친다는 식으로 말한다. 주위를 둘러보다 트로피에 얼굴이 없는걸 보고 왜 이렇게 됐냐 한다. 루비는 잃어버렸는데 못 찾았다고 하고 하커는 이런 걸 찾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한다. 시간이 늦어서 안나가 하커를 보냈고 집에 돌아온 하커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다. 롱레그스 사건 때문에 기분이 좀 안 좋은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인 루스에게 전화를 거는데 한참을 안 받다가 전화를 받는다. 왜 안 받았냐고 하니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하커가 좀 우울해 보이니 루스가 자신에게 말을 해보는 게 어떻냐 한다. 하지만 하커는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내용일 거라며 거절하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하고 전화를 끊는다.
얼마 안 있어 쾅쾅 하며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걸쇠를 걸고 누구냐고 말을 걸어보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커는 불안해하며 총을 들고 그림자가 보였던 뒷문 쪽으로 나선다. 하커가 집을 나간 사이 집 안에는 이미 누군가가 침입을 했다. 하커가 너무 무방비하게 집을 나선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한적한 곳에 있는 통나무집처럼 보여서 자기가 자기 몸을 지키려고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하커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활짝 열린 문을 발견했고 자신이 원래 있었던 책상으로 돌아간다. 책상 위엔 아까까진 없었던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있었고 롱레그스라고 적혀있었다. 생일인 14일까지 열어보지 말라고 쓰여있었는데 봉투를 뜯어보니 엄마를 죽인다는 식의 노래 가사 같은 편지 내용이 암호문으로 적혀 있었다. 생각 외로 하커는 암호를 보자마자 바로 암호를 풀어냈다.
암호를 풀어낸 덕분에 하커는 롱레그스 사건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됐다. 지옥의 9개 고리인가 하는 책을 펼치고 30년간 일어난 사건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 알고리즘을 알아내게 된다. 살인 날짜를 선으로 연결시키니 책에 있는 악마의 표식과 모양이 같았다. 역삼각형 모양과 직선들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사이 6이 써져 있었는데 14일에 생일을 맞는 소녀들이 생일에서 6일 내에 죽었던 것과 모양이 일치했다. 악마 표식에 6이 거꾸로도 써져있던 걸 생각해 보면 소녀들의 나이가 9살인 것도 사실 6을 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롱레그스가 남긴 성경 문구가 요한계시록 13장 1절이었는데 이것도 결국 13+1=14를 의미했다. 14에 왜 집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 구절 자체는 의미심장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하커는 이 문구를 말하며 롱레그스가 하나가 아닐 거라고 카터에게 말했다.
2장 너의 모든 것
롱레그스의 편지를 조사하던 중 전화가 와서 엄마인 줄 아는데 전화는 엄마가 아니라 카터였다. 또 사건이 터졌다는 거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14일이 생일인 딸이 있는 가족이었다. 가족 여행도 계획한 상태였다는데 이미 죽은 지 한 달이나 지난 상태여서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시체를 보고 나서였나? 하커가 뭔가의 기억을 떠올리고 멍 때리기도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자면 카터는 하커가 이 사건을 맡은 뒤로 잘 풀리는 느낌인데 혹시 기억나는 게 없냐고 한다. 왜 그런 소릴 하나 했더니 알고 보니 하커도 14일이 생일이었고 9살 생일 전날 루스가 경찰서에 전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커는 이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한번은 하커가 또 루스에게 전화를 거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루스가 요즘 기도를 하냐 묻는다. 기도를 하면 악마로부터 보호받을 거라며 기도를 하라고 한다. 근데 하커랑 루스가 전화할 때 공백에 상당히 큰데 그래서 그런지 전화할 때마다 뭔가 불안감이 느껴진다.
카터는 롱레그스에게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살았던 캐리 앤 카메라 농장으로 가보자고 한다. 14일에 죽은 가족은 캐리 가족뿐이었나 그랬다. 뭔가에 홀린 듯한 캐리의 아빠는 집에 왔던 신부도 도끼로 찍어버리고 아내마저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그리고 자살을 한 건데 살아남은 캐리는 현재 정신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캐리의 농장은 스산함만이 감돌았다. 카터와 하커는 밤늦게 도착해 건물 안을 둘러보는데 십자가 표식을 본 하커가 그 표식을 따라 건물 위쪽으로 올라간다.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카터가 바닥 가운데에서 예수상이 매달린 십자가가 박힌 나무판자를 발견한다. 판자를 여러 개 떼어내자 나무 상자 같은 게 보였고 열어보니 사람만 한 인형이 들어있었다. 그걸 꺼내서 세워보자 인형 눈이 떠진다.
인형을 조사해 본 결과 머리카락은 인모였고 머리 안에는 쇠구슬이 하나 들어있었는데 안에 든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인형을 분해한 사람이 쇠구슬의 소리를 들어보라며 들려주는데 그 소리를 듣자 하커는 이상함을 느낀다. 자꾸 사탄을 상징하는 뱀의 장면이 여러 번 지나가기도 한다. 이후 카터와 하커는 캐리를 만나러 정신병원에 가는데 의사가 매우 놀라워한다. 거의 30년을 긴장증 환자로 살아왔는데 어제 갑자기 스위치가 눌러진 것처럼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누군가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는데 방문 기록을 보니 리 하커라고 쓰여있었다. 신분증 확인 같은 건 딱히 하지 않는다 해서 진짜 누가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커가 캐리를 만나보는데 제정신인 거 같으면서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하커를 보고도 이미 만난 적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고 그가 말하는 대로라면 자신은 뭐든 할 거라 말했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라면 기쁘게 자살할 거고 맨손으로 당장 하커를 죽이라고 하면 하커를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캐리는 하커에게 상당히 적대적인 편이었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하커는 루스에게 가서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하커의 엄마인 루스도 그다지 정상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과거를 물어보니 피로 물든 나날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하커가 방을 돌아보던 중 잠긴 문틈에서 벌레가 나와서 잠긴 열쇠 문을 열려 하는데 루스가 일부러 하커를 불러서 못 들어가게 한다. 루스는 하커에게 거짓 없이 대답해 주길 바란다며 질문을 하는데 그건 평소 기도를 하냐는 질문이었다. 하커는 하지 않았다고 하며 기도하는 게 무서웠다고 한다. 그러자 의외로 루스는 잘했다면서 기도는 하등 도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커가 루스에게 9살 때 생일 관련해서 묻자 모든 건 너의 방 안에 있다고 말한다. 방에는 하커가 어릴 때의 물건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었다. 하커는 그 상자를 자기 집으로 옮겨와서 장갑을 끼고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거기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게 된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롱레그스라 불린 남자였다. 영화 오프닝에서 나왔던 여자애는 하커였고 어릴 때 이미 롱레그스와 만난 적이 있었던 거였다. 하커는 사진 속 남자가 롱레그스라 확신하고 카터에게 사진을 전달한다.
3장 생일을 맞은 소녀들
얼굴에 하얗게 분칠하고 머리는 곱슬에 푸석푸석한 롱레그스의 이름은 코블이었다. 감독은 글램록 뮤지션이 야매 성형에 손댔다가 얼굴이 망가지고 사탄을 숭배하게 된 남자로 설정했다고 한다. 어쩐지 얼굴이 성형 망친 느낌이 좀 들긴 했다. 그런 설정이라 코블이 중간에 짧게 노래도 부르고 그랬던 거 같다. 코블은 길에 서있다가 경찰차에 둘러싸여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를 잡아넣으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했고, 하커는 분명 공범이 있을 거라 말한다. 무슨 생각인지 코블은 심문할 때 계속 하커만 찾았다고 한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며 하커만을 불러댔다. 하커는 공범을 찾아내기 위해 코블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하커를 보고 상당히 반가워한다. 하커가 이것저것 캐묻지만 명확한 해답은 내놓지 않았고 루스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넌지시 알려줄 뿐이었다. 그러더니 “사탄 만세!”라고 외치고 테이블에 얼굴을 사정없이 박아서 자살해버린다. 얼굴이 뭉개지며 튀기는 피를 하커는 고스란히 맞았고 그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뒤늦게 다른 요원들이 찾아왔지만 이미 상황 종료.
카터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하커에게 화를 낸다. 코블이 죽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와 동시에 캐리도 병원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것이다. 사건을 포기하지 않았던 하커는 루스에게 찾아가 심문을 해보기로 한다. 집에 찾아갈 때 다른 요원인 브라우닝이 같이 간다. 하커는 혼자 갔어도 괜찮았다 하는데 브라우닝은 그런 광경을 본 하커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따라온 거라고 한다. 일단 브라우닝은 차에서 대기를 하고 하커가 집에 들어가 루스와 만나기로 했다. 하커가 집에 들어간 사이 루스는 산탄총을 들고 바깥으로 나와 브라우닝을 쏴 죽여버렸다. 하커가 나왔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이후 루스는 그(코블)가 죽었구나 하더니 이젠 하커도 자유라며 하커와 닮은 인형의 머리를 총으로 쏴버린다. 코블이 죽은 뒤에야 그 인형을 찾아낸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겠다. 인형 머리가 깨지자 검은 연기 같은 게 빠져나왔고 갑자기 쓰러진 하커의 머리에서도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하커는 몰랐었지만 어렸을 때 코블과 만난 이후 머릿속에 악마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었고 암호문 같은 것도 그저 오래 쳐다본 것만으로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잊을만하면 나타났던 검은 그림자(=악마)가 그녀의 주위에 나타난 건 겁을 주려고 한 것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한 번씩 하커의 이름도 불러주고 창문에 머리도 박아주고 은근히 자주 등장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하커가 기도하는 게 무서웠던 이유는 머릿속의 악마 때문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커는 자신의 모양을 한 인형의 머리가 깨짐과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다. 하커의 과거와 루스의 비밀은 루스의 입을 통해 작은 프레임을 통해 진행된다. 영화는 프레임이 왔다 갔다 거리는데 과거나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4:3 비율로 진행되어 나온다. 이게 나름 좋은 연출이었던 거 같다. 하커가 코블과 만났던 날, 그 모습을 본 루스가 코블에게 누군데 애한테 말을 거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상황은 어느샌가 역전돼서 코블이 루스를 결박하고 하커를 죽이려 했다. 코블은 “잘 지낼 수 있었는데! 네가 안 그랬잖아!” 이런 식으로 말하며 협박했고 루스는 선택을 해야 했다. 코블의 말을 따를 것인지, 하커가 죽게 놔둘 것인지. 그녀는 코블의 하수인이 되기로 했다. 코블은 인형을 제작해서 머리 안에 악마의 일부를 집어넣었고, 그 악마는 그 인형을 받은 가족에게 들어가 비극을 일으켰다. 그냥은 인형을 떠넘길 빌미가 없으니 가족이 자연스럽게 받게 하기 위해서는 루스가 필요했다. 루스는 14일에 생일을 맞게 되는 아이의 집에 수녀 복장을 하고 찾아가 교회에서 죽는 선물이라면서 인형을 선물해 줬다. 그 인형을 받은 집의 아버지는 악마에게 홀려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살하게 되었다. 마치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것처럼 코블은 루스의 손을 빌려 악마가 활개치도록 만들었다.
루스가 인형을 건넨 뒤 하는 일은 그 사건의 참상을 눈으로 담는 일이었다. 괴로워했지만 어느샌가 그녀는 코블과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브라우닝을 죽인 뒤 기분 좋은 듯한 표정으로 “사탄 만세!”를 외쳤기 때문이다. 코블이 죽은 지금 그녀는 또다시 인형을 다른 가족에게 주려고 하고 있었다. 하커가 잠에서 깨어난 곳은 코블이 인형을 제작하던 지하실이었다. 그리고 그 지하실은 루스의 집 지하실이었다. 하커의 귀에 늦었다는 악마의 말이 들려왔다. 인형 제작실의 한구석에 잠깐 시커먼 게 나왔다가 사라졌는데 (영화 볼 때 얼핏 봐서 잘못 본 줄) 알고 보니 그건 악마의 형상이었다. 하커는 총을 들고 무작정 차를 타고 카터의 집으로 향한다. 루비의 생일 파티 날이었다. 카터는 자신의 딸 생일이 14일이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법도 한데 영화 내내 그와 관련해서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타깝게도 하커가 도착했을 땐 악마 말대로 이미 늦은 상태였다. 카터 가족에게도 인형이 이미 전달됐다.
카터는 별것도 아닌 거에 막 화를 내고 아내 안나는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자 카터가 갑자기 케이크 자를 칼이 필요하니 부엌에 가겠다고 하면서 안나를 데리고 간다. 예상대로 카터는 부엌에 가서 안나를 사정없이 난도질해 죽였다. 화면에 나오지는 않았으나 소리만으로 죽었다는 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루스는 모든 가족이 죽어야 한다면서 이걸 따르지 않으면 루스와 하커 모두 지옥에서 비틀리고 괴로워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런 상황에도 이미 홀려있는 루비는 인형을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 초반에 루비 어쩌고 하는 노래가 나온 건 이 상황의 복선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안나를 죽인 카터가 루비를 죽이기 위해 부엌에서 나오자 하커가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루스는 하커가 자신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악마 의식에 사용될 법한 칼을 꺼내들어 하커를 죽이려 한다. 하커는 루스의 머리에 총을 쐈고, 뒤이어 루스가 가져온 인형의 머리에도 총을 쏘려 하지만 총알이 다 떨어져 없앨 수가 없었다. 하커는 눈물을 흘리며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홀려있는 루비는 인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화면이 바뀌고 코블이 “사탄 만세!”라고 외친 뒤 허공에 뽀뽀하는 시늉을 하고 웃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첫 문단에서 다 말하긴 했는데 또 이어서 쓰자면 사건이 뒤에 몰려서 안 나오고 중간에도 좀 사건이라 할만한 것들이 더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악마의 형상 같은 걸 숨겨놨다 해도 못 찾으면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것들이기도 했고 영화인데도 화면보다 말로만 설명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다 보니 더 지루하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화면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해석이 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엄마는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주제도 있다고 한다. 그건 감독의 자전적 요소 때문에 들어간 거라 하는데 그런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감독 아버지가 배우이자 동성애자였는데 어머니가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자식들에게는 끝까지 감추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911 테러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풍파가 많은 인생을 겪어서 이런 영화를 찍었나 싶었다. 그래도 감독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는 못 하겠다; 영화 자체도 악마가 든 인형 머리를 깨트리지 못해서 찝찝하게 끝나기도 했고... 취향이 맞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좀 지루하게 느껴질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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